브런치북 사소의 곁 30화

뒷모습을 바라보는 뒷모습

허공을 흔들던 빈 손

by FONDOF

2025년 12월, 아파트 내 지하주차장









묵직한 히터공기가 차 안을 감돌면

수면의 약이 눈꺼풀에 잔뜩 내려앉는 기분이다.

덕분에 돌아오는 내내 나도 아이와 함께 신나게 잠들었다가

속도가 느려지며 익숙한 덜컹임이 느껴져 눈을 뜨니

순간이동한 듯 눈에 익은 내 집 앞이었다.


지하주차장에 도착하니 저녁 7시 30분 경이 되었다.

양양에서 춘천, 다시 춘천에서 집까지 긴 운전을 한 남편은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오후 다섯 시쯤부터 카시트에서 잠이 든 아이는

볼이 발그레해지도록 쌔근쌔근, 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김이 펄펄 나는 양양 온천에서 수영을 하고

다음 날 레고랜드까지 들렀다 오는 일정이었으니

잠이 많이 부족하기도 했을 법하다.


"좀 더 재울까?"
"그래. 여보 수고 많았네. 좀 쉬어."


주차박스에 차를 안착시키고 라이트를 끈다.

아이의 야트막한 숨소리만이 있는

고요한 순간.



나는 주섬주섬 아빠다리를 풀어 발끝으로 신발을 더듬으며 신었다.

귤껍질, 과자봉투, 빈 페트병 등 쓰레기들을 정리하고

아이 패딩이며 모자, 내 목도리, 남편의 아우터 등을 바리바리 왼 팔에 걸쳐쌓는다.

1박 2일간의 여행이 지나 간 자리,

여운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다.








그때 우리 차 맞은편 주차박스에 카니발 한 대가 들어왔다.

라이트가 꺼지고 뒷문에서 할아버지로 보이는 남성분이 내리셨다.

뒤이어 7살쯤 보이는 여자아이와 네다섯 살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촐랑이며 내렸다.

조수석에서 단발머리를 한 엄마가 양손 가득 가족들 옷가지를 한 아름 들고 내렸다.


할아버지로 보이는 남성분이 성큼성큼 몇 발짝 만에 우리 차 옆으로 오시더니

옆 칸에 주차된 제네시스 SUV 차량의 운전석을 열고 시동을 거신다.

계란 한 판과 간단한 짐가방을 뒷좌석에 넣으시고는

구부린 허리를 천천히 펴시며 운전석 문을 반쯤 열어 잡고 서서

맞은편에 주차된 카니발 차량을 바라보셨다.


"할아버지 빠빠~ 빠빠이 할아버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까 그 남자아이가 할아버지에게 인사하는 소리가 지하주차장에 울려 퍼진다.

할아버지는 운전석 문 안쪽으로 몸을 반쯤 넣으신 상태로

보닛 너머 손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커다랗게 팔을 흔드셨다.

"어어, 이준이 안녕~ 이준이 잘 있어~"


그러면서도 바로 운전석에 타지도 않으시고

문으로 몸을 반쯤 가리신 채로 서서 고개를 쑥 내밀고

딸내미 가족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지아도! 외할아버지 인사해! 안녕히 가세요~ 해!"

엄마의 목소리가 카랑카랑 들려온다.

"안녕히 가세요..."

나지막하게 손녀딸의 음성이 들렸고

할아버지는 다시 허공에 빈 손을 커다랗게 흔드셨다.

"지아 잘 있어~ 또 만나~"

하신다.



"아빠, 가아~"

엘리베이터 입구 쪽에서 짤막하게 들려오는 아이들 엄마의 음성,

그녀의 아빠는 말없이 손을 흔들어 보이셨다.


곧이어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가 트렁크에서 뭔 박스를 두세 개 꺼내 들고

무거운 듯 살짝 구부린 무릎으로 빠르게 걸어 나왔다.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면서 장인어른에게 까딱, 인사한다.

"아버님... 들어가십쇼!"


"어어... 그래..."




요란스러운 퇴장행렬이 끝났고

'문이 닫힙니다.'

엘리베이터 기계음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지하주차장은 다시 고요해졌다.




그제야 할아버지께서는 천천히 운전석에 앉으시고는

차 문을 닫고 시동을 거셨다.

그리고는 매끄러운 운전으로 지하주차장을 빠져나가셨다.









옆 차가 빠진 자리가

휑 하다 느껴졌다.

















#사소의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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