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에 자막 입히기
언젠가 나를 인터뷰했던 조선일보 박돈규 기자는 기사의 제목을 "자막, 흠집의 예술"이라고 하여, 기사를 썼다.
그의 말처럼 자막은 필름의 영상이 현상된 면에 흠집을 내어 빛을 투과시켜야 만들 수 있었다. 과거형으로 기술하는 이유는 그 이후에 자막의 제작 방법에 많은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물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막을 만들기는 하나 아직도 필름 영사기에서는 필름의 일부에 손상을 줘서 빛을 투과시키는 방법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일반적으로 업계에서 많이 사용되는 필름용 자막 방법 세 가지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면...
첫 번째 방법
동판으로 자막용 도장을 만들어 찍어내는 동판형 자막 제조의 방법이다.
박돈규 기자의 기사에 한마디로 요약되어 있다.
"필름에 자막을 넣는 과정은 이렇다. 먼저 컴퓨터에 자막을 써넣고 종이에 출력한다. 글자들을 실제 자막 크기로 축소한 후 사진을 찍어 네거티브 필름으로 옮긴다. 감광액을 바른 동판에 이 필름을 올려놓고 빛을 쪼인 후 화학용액에 담가 부식시키면, 빛이 통과했던 글자 부분만 양각(陽刻)으로 동판에 새겨진다. 마지막으로, 촬영된 35㎜ 필름에 약품을 바르고 이 동판으로 도장을 찍듯 누르면 글자가 새겨진 곳의 필름 앞면이 벗겨지면서 필름에 미세한 흠집이 생긴다. 자막이다."
태-영화체를 만들 당시만 해도 이 방법 이외의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레이저를 이용하여 필름에 자막 글자를 인자하는 레이저 자막 제조의 방법이다.
레이저의 특성상 기존 태-영화체를 단선화 하여 태-영화단선체를 만들고, 이 단선체 글자를 필름 막면에 레이저로 인자하여(태운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자막을 만드는 방법이다. 태-영화체의 경우 초기 제작 단계에서부터 획의 굵기를 일정하게 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어 글꼴을 만들었기 때문에 단선체로 변화된 이후에도 그 맛을 그대로 살려 자막을 제조할 수 있었다.
현재 가장 많은 영화 자막이 레이저로 제작되고 있다.
광학적 방법으로 원본 현상 단계에 자막을 네가(negative) 필름에 현상하고 이를 이용하여 극장 상영용 필름을 제작하는 방법으로 가장 손쉽게 제작할 수 있으나 원본 필름을 재가공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또 다른 광학적 방법으로는 자막만을 하이콘 필름(High Contrast Film)에 현상하여 원본 네가 필름의 현상 시에 오버레이(overlay) 기법을 이용하여 글자를 인자하는 방법으로 원본의 손상 없이 광학 기법을 이용하여 자막을 손쉽게 제작할 수 있는 방법이다.
국내에서 극장 상영용 필름을 현상하는 경우에는 세 번째 광학적 방법을 사용하면 되고, 외국의 배급사에서 상영용 필름을 미리 제작하여 국내에 보내는 경우에는 첫 번째나 두 번째 방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필름에 자막을 입히는 과정은 이제 거의 사장된 기술이다.
이제 대부분의 영화관에서는 필름용 영사기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글꼴은 아직도 우리 회사가 만든 태-영화체를 사용하지만 디지털 영사기를 이용하여 자막을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마치 컴퓨터에서 동영상 자막을 사용하듯이 자막 파일에 데이터를 입력하는 것 만으로 자막이 만들어진다.
나는 LP음향의 감성 때문에 CD의 선명한 음색을 포기할 수 없는 것처럼 옛 추억을 되살리려고 필름 영화를 상영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 그 시절 영화가 만들어지던 당시에 수십 개의 필름롤이 자막기에 걸려 자막이 입혀지던 때를 추억할 뿐이다.
세월은 가고 새로운 기술이 온다.
그리고 그때를 경험하고 새로움도 함께 맛볼 수 있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