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옵니다

아련함: 말할 수 없는무언가1

by 오래된 독서가

회사에서, 학교에서 1년에 잊을만하면 내뱉는 문장이 있다.

“아, 벌써~ ㅇ월이네요”, “와 진짜 시간 금방 간다”


그 문장을 내뱉을 때면 언제나 한 계절이 바뀌어 있다. 과학자들은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은 착각이고 실제론 사건에서 다음 사건으로 이어지는 흐름으로 인한 현상일 뿐이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린 과학자들의 그런 말은 잘 모르겠고, 느끼기에 시간이 속절없이 내일로 또 다음 달로 우리를 밀어 넘기는 것만 같다.


나는 10월로 접어드는 새벽에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잊으려고만 하면 떠오르는 문장이 떠오른다. 벌써 10월이네, 왜 이리 시간이 빨리 가지? 이제 올해도 3개월밖에 남지 않았어 라고 말이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는 것은 도저히 인간인 나로서는 멈출 수 없는 불가항력이다. 그럼 나는 부랴부랴 내가 한 해 동안 무얼 하고 살았는지, 내가 집콕 라이프로 등이 따뜻한 삶을 살았는지 흐릿한 기억 속 서랍을 열어본다. 다들 그렇겠지만, 역시나 올해도 나는 기억의 파편들 속에서 내 등만을 따뜻하게 했다는 걸 깨닫고, 자연스레 이 회사를 왜 다니고 있는가? 푸념에 잠긴다.


그 푸념은 굉장한 것을 사유하는 철학자인 것처럼 고가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소리를 들으며 인생을 논한다. 나보다 인생을 몇십 년이나 더 산 사람들이 이 글을 본다면 코웃음을 치겠지만, 각자의 나이의 무거운 무게 추는 하나씩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예전에는 가을을 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싶었지만, 이제는 그 말이 왜 그런지 이해하게 됐다. 가을을 탄다는 것은 왕성하고 풍요로운 계절이 지난 후 남겨진 삶의 무게를 의식하게 된다는 것이라는 걸 말이다.


무게는 점점 더 기온이 내려갈수록 선명해진다. 공기의 입자가 서로를 끌어당기던 여름이 지나면 공기 입자들은 서로의 결속이 느슨해진다. 느슨해진 결속은 필연적으로 빈 공간을 만들고 우리의 무게는 상대적으로 더욱 크게 느껴진다.


보통은 삶의 무게라고 이야기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나는 반대다. 나는 그런 무게를 느끼는 게 싫지 않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면, 무슨 말이냐고 웃지만, 요즘 드는 생각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우리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싶다. 삶의 무게를 통해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되니깐. 무미건조하다고 느끼는 영화 속의 살인자들은 살인을 통해 감정을 느낀다고 이야기한다. 평범한 우리는 그런 식으로 삶의 존재를 확인하지는 않는다. 나는 평범한 우리 같은 이들이 삶에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삶의 무게 덕분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우리는 항상 역사적 장소 찾거나, 존경하는 영웅을 떠올리곤 한다. 그 장소를 특별하게 만들고 영웅을 만드는 것은 그 장소를 찾았던, 영웅과 관계했던 사람들의 삶의 무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방송과 책 등을 통해서 꾸준히 찾는 이유도 그들의 삶의 무게에서 매력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그에 비해 주목받지 못한다. 역사는 걸출한 영웅들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생각해보면 그들이 써 내려가는 그 이야기 주변부에는 항상 주변인이었던 우리들이 존재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실화를 다루는 영화들 중에서 당시의 시대상의 묘사를 어떻게 했는지에 따라 작품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평론가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본다. 그렇기에 기온이 낮아 텅 빈 것 같이 느껴지는 도시를 보면서 그런 삶의 무게에 나는 울컥해질 수밖에 없었다. 작은 삶의 이야기가 모여 큰 이야기를 만들어진다고 내가 믿기 때문에.


그래서 내게 가을이 온다는 것은 한 해가 끝나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짊어진 삶의 무게들을 더욱 증폭시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계절이 되는 것 같다.


요즘은 가을을 즐기려고 하면 금세 기온이 떨어져 정신을 차리고 보면 겨울이 되어 있어 아쉬움이 많지만, 그 속에서의 삶의 무게를 생각하는 시간들을 즐기기엔 아직까진 우리에게 주어진 가을은 충분한 것 같다.

2020.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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