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읽어준 책
아이가 작년부터 '선생님 역할 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 놀이 활동을 하다가 평소와 다른 말투로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선생님께서 아이들과 대화할 때 쓰는 문장들이었다. 제법 어른스러운 말투를 잘 소화해 해는 아이의 모습이 신기하고 더 듣고 싶어서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하며 대화를 이어나가곤 했다.
어제도 선생님 놀이를 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아이가 책을 들고 와서는 '친구들('친구들이 와 있다고 하자 엄마'라고 직접 상황 설명도 해 줬다) 우리 같이 책 읽어볼까요?'라고 묻더니 자리에 앉아 내가 보기 편하게 책을 펼쳐서 읽어주기 시작했다.
아이의 말의 변화 과정은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다. 분명 단어로 대화를 이어 나갔는데 짧은 문장에서 긴 문장으로 나와 대화를 이어가는 아이가 매일 신기하다. 그런데 이제는 나에게 책을 읽어주기까지 하다니. 선생님 역할 놀이었지만 좀 놀라웠다. 특히 의태어와 의성어도 자유롭게 잘 사용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편으로는 아이가 내게 책을 읽어준다는 것 자체가 너무 기분이 좋았다. 아이의 마음속에는 '책을 읽어줘야 한다'는 의무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역할 놀이가 시발점이 되긴 했지만 강요, 의무가 아닌 순수하게 좋아서, 재미있어서, 즐거워서 등등 스스로 원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활동임이 분명했다.
책이 아이의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 늘 조심스러웠다. 혹여나 아이가 부담이 될까 봐 내가 먼저 '책 읽자'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마음속으로만 아이가 즐겁게 책을 읽기를 바랐다. 학습 효과를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마음으로 책과 친해지기를 바랐다. 책을 향한 아이의 마음이 이제 열린 것일까?
아이와 주거니 받거니 했던 대화 속에 '책'이 들어왔다. 함께 손을 잡고 각자 읽을 책을 고르고 한 자리에 앉아 읽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마지막 장을 덮는 아이와 나. 서로 마주 보며 웃고 있을 아이와 나의 모습이 벌써부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