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부부싸움을 하고 힘든 시간이 있어도 신혼 때 행복했던 기억으로 결혼 생활을 유지해 나간다고 한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런 신혼 생활이 단 하루도 없었던 것 같다.
연애 기간이 짧아서 결혼하고도 연애하는 것처럼 지낼 거라고 상상하면서 결혼을 준비했었는데 현실은 달랐다.
시댁이라는 현실적인 벽 앞에서 나는 너무 무섭고 막막했다.
결혼 전에는
내가 잘 하면 시댁정도는 극복할 수 있다는 나의 다짐과는 달리, 신혼 여행을 갔다 온 이후로 시댁에 가는 것을 거부했다.
핑계는 시아버지께서 나에게 한 말실수였다.
지나고 보면 그건 아무 의미도 없는 그냥 무심코 할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시댁의 긴장감이 싫었고, 시아버지라는 어렵고 무서운 남자 어른이 싫었다.
어렸을 적부터 우리집에는 남자 어른이 없었다. 그래서 남자 어른이 주는 무게감을느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시아버지가 주는 긴장감이 낯설고 힘들었다.
나는 안 갈 이유를 열심히 찾았다. 전남편한테는 이유를 말하지도 못하고,
시아버지가 실수한 걸 자꾸 이야기 하고, 몸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면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거부했다.
당연히 전남편도 점점 나에게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나 역시 이런 내 마음을 잘 파악하지 못한 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섭섭해 하고 불만을 자꾸 말하면서 싸움을 만들었다.
지나고 보니...
근본적인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내가 나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외부 요인을 핑계삼아 나를 자꾸 방어한 것이다.
내가 안 할 핑계를 자꾸 만든 것이다.
"미움받을 용기"중에서
철학자:
적면공포증을 고치고 싶다면 혼자가 나타났을 때 카운슬러는 그 증상을 고치면 안 되네. 그러면 스스로 다시 일어서기가 힘들어지거든. 아들러 심리학의 관점에서는 그렇게 본다네.
청년: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되나요? 고민을 듣고도 그대로 방치하라는
철학자:
그 학생은 자신감이 없었네. 이대로 고백했다가는 차일 게 틀림 없어. 그러면 점점 자신을 잃고 상처 받게 될거야. 하는 공포심이 있어. 그래서 적면공포증이라는 증상을 만들어낸 걸세. 이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일단 '지금의 나'를 받아 들이고, 결과가 어떻든지 간에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갖게 하는 것이라네. 이러한 접근 방식을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용기 부여'라고 하지.
나에게 적면공포증은 시아버지의 말실수였지 않을까?
그 핑계를 대지 않으면 시아버지와 계속 관계를 맺어야 하고 불편함을 이겨내야 할 게 뻔하기 때문에...
난 용기가 없었던 게 아니었나 반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