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과 막국수
막국수. 평양냉면의 유행이 끝나고 전국적으로 다양한 막국수 집이 떠오르고 있다. 원래부터 유명하던 용인의 고기리 막국수나 고성의 백촌 막국수 같은 유명 매장을 제외하고도 번화가라면 막국수 집이 쉽게 보일 정도다. 최근엔 BTS의 뷔가 유튜브 '채널십오야'에서 최애 음식으로 들기름 막국수를 뽑기도 했다. 막국수는 종류도 형태도 정말 다양하다. 덕분에 그래서 막국수가 뭔데,라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쉽지 않다. 오늘은 이 막국수에 대해 알아보자.
막국수는 강원도에서 시작된 향토 음식이다. 메밀을 껍질까지 막 갈아 만들어서 막국수라는 얘기도, 음식을 주문하면 바로 막 만들어서 막국수라는 얘기도 있다. 당시 강원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던 식재료인 메밀을 활용한 면 요리로, 사실 냉면처럼 대표적인 겨울 요리다. 냉장, 냉동 설비가 발전하기 전인 한 겨울, 살얼음이 낀 물김치, 특히 동치미 국물에 면을 말아먹던 게 시작이다. 우리가 한 겨울 전기장판에서 귤 까먹듯, 선인들은 뜨끈한 온돌방에서 시원한 막국수와 냉면을 겨울철 별미로 즐기셨다. 사실 온도 조절이 될 리 없어 난방을 하면 과하게 뜨거웠던 겨울철 방에서 열기를 식히려 먹던 음식이기도 하다. 현대에 들어서는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즐기는 별미로 발전하였고, 경제 수준이 올라감에 따라 동치미 국물에 고기 육수를 섞기도 하고, 소금이나 식초, 간장, 양념장 등을 더해서 자극적으로 먹기도 한다.
여기서부터 냉면과의 경계가 무너진다. 메밀을 주 재료로 고기 육수와 동치미 국물을 섞어 육수를 만들고, 각종 양념과 고명을 올려 먹는 요리. 냉면과 다를 게 없다. 때문에 현대의 막국수 얘기를 하려면 냉면 얘기를 할 수밖에 없다. 대체 이 둘은 무엇이 다른 걸까.
흔히 물냉면을 대표하는 건 평양식 냉면이다. 평양냉면과 막국수 모두 면의 주재료가 메밀이라는 것도 같다. 다만 막국수는 물과 비빔의 구분이 없다. 요즘 들어 양념 유무에 따라 나누기도 하지만 애초에 막국수는 먹을 때 육수나 동치미 국물을 좀 많이 부으면 물 막국수, 적게 부으면 비빔 막국수다. 그 양념조차 막국수의 발상지인 강원도의 특징을 생각해 보건대 쉽지 않다. 소금조차 귀해서 동치미로 맛을 잡고 심심하게 요리를 내는 곳에서 고추를 활용한 양념장이 발달했을 리 없다.
더불어 평양냉면은 꿩을 비롯한 고기 육수를 섞어 만든다는 기록이 많다. 하지만 막국수는 다르다. 서민의 대표 음식으로써 바로바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육수를 우리는 긴 시간을 투자하는 것도, 고기 육수를 내는 것도 사실 어울리지 않는다. 하여 김치 국물에 메밀 면. 그것도 제분 기술의 부족으로 껍질을 완전히 거르지 못해 거친 메밀 면. 여기에 김치를 썰어 고명으로 올리는 형태가 가장 온전한 막국수의 형태일 것이다.
역사에서도 차이가 난다. 냉면의 역사는 상당하다. 특히 제면 기술과 관련한 이야기는 정말 많다. 면을 눌러 뽑기 위해 누워서 온 힘을 다해 발로 미는 방식, 무거운 돌을 올려 누르는 방식 등 다양했다. 면 뽑는 일이 먹고 싶을 때 막 뽑아 먹을 수 있을 만큼 쉬워진 건 그렇게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두 음식의 차이는 고기 육수나 메밀껍질 같은 게 아니라 발상 시기로 보는 게 적절해 보이는 이유다. 현대에 두 음식은 사용한 부재료 차이 정도지 인문학적 요소를 빼면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
다만 발전의 형태는 굉장히 다르다. 평양냉면은 역사가 깊은 만큼 고기 육수에 동치미 국물, 거기서 나온 고기와 김치 고명을 올려 먹는 요리로 완성되었지만 막국수는 보다 다채롭다. 서울과 춘천에선 족발이나 닭갈비와 함께 즐기는 쟁반 막국수의 형태로 변화했으며, 강원도에선 기존 막국수의 형태는 물론 함흥냉면이나 속초식 냉면과 비슷하게 회 냉면처럼 먹는 경우도 있다. 아니면 아예 면과 고명만 주고 양념과 육수는 알아서 기호대로 먹으라는 곳도 흔하며, 최근엔 들기름 막국수가 최고의 유행이다. 같은 뿌리에서 서로 다른 시기에 비슷한 형태로 발전했지만, 높은 완성도로 멈춰 버린 게 평양냉면이라면 여전히 다양한 시도로 발전하고 있는 게 막국수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평양냉면은 형태나 취향을 벗어나 그들끼리도 진짜니 가짜니 전통이니 뭐니 하며 싸우는 게 일상이지만, 막국수로 그러진 않으니.
면식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다양한 면요리의 발전은 언제나 최고의 행복이다. 다음 주엔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면 요리인 '라멘'에 대해서 궁서체로 다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