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얘기

주5일 글쓰기

by 김모씨


먹는 얘기


글쓴이 : 김모씨


아침에 일어나 한동안 멈췄던 원서를 읽었다. 옷을 갈아입고 아침을 먹었다. 빵 한 쪽과 커피 한 잔, 호두 몇 알과 건조 블루베리를 함께 먹었다. 사무실에 내려와서 일을 시작했다. 동영상 편집기로 5분짜리 영상을 만드는 일인데 쉬운 기능을 잘 몰라서 한참 헤맸다.

몇 시간 더 헤매다 배가 고파 점심을 먹었다. 닭가슴살 스테이크와 흰 쌀밥, 김치를 먹었다. 딱 20분 쉬고 다시 사무실에 돌아왔다. 오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잘하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집에 잠깐 들러 집 앞에 택배 기사에게 전달할 짐을 내놓았다. 항상 주말에 방문하시는 주인집 할아버지가 평일인데 집에 계셨다. 김장을 하려는지 배추를 뽑아 나르는 사람이 보였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누가 저 배추를 씻고 절이고 헹굴까. 누가 속을 버무리고 절인 배추 사이 사이에 양념을 넣을까, 남의 일이지만 걱정이 되었다.


매년 김장을 했다. 가기 전에는 마음의 부담이 컸고 가서는 고생이 심했다. 김장을 마치면 녹초가 되는데 그 후에도 일이 남았다. 밥상을 차리고 치워야 했다. 김치 냉장고 가득 김장 김치로 채우면 든든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배추김치와 함께 남은 무로 석박지를 만들곤 하는데 잘 먹지 않아 그대로 곰팡이가 피었다. 못쓰게 된 김치는 주로 친정엄마 몫이었다. 정기적으로 딸 집에 방문해 냉장고 청소를 하는 엄마는 오래되고 방치된 김치통을 차로 싣고 갔다. 그걸 씻어 끓여 먹는다고 했다. 애초에 김치를 조금만 담갔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친분이 있는 엄마들을 만났다. 선한 인상에 좋은 성격을 가진 분들이다. 한참 대화를 나누다 결국 ‘먹는 얘기’로 돌아갔다. 삼시 세끼를 챙기는 일에 대한 토로가 이어졌다. 힘들게 차린 밥 대신 알약 한 알로 끼니를 대신하면 좋겠다는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서 거기인 메뉴를 정하는 일, 예산 안에서 외식과 장보기의 균형을 맞추는 일, 차린 밥 대신 라면이나 삼각 김밥을 선호하는 아이들을 보는 일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할 말이 너무 많아 오전 열 시에 커피 전문점에서 만난 엄마들은 세 시간 내내 커피 한 잔을 앞에 둔 채, 핸드폰을 확인하지도 않고 화장실에 다녀오지도 않았다. 한 시가 넘어가자 하나둘 전화기가 울렸다. 하교를 한 자녀들의 확인 전화였다. 결국 시간이 부족해 점심 식사도 못 한 채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어제는 한 끼도 챙기지 못했다.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에 쌀을 씻어 취사 버튼을 누르고 남편에게 아이와 아침을 챙겨 먹으라고 당부했다. 만남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둘은 아침밥을 먹고 피자를 데워 점심 식사도 마친 후였다. 바나나를 입에 문 채 기차 시간에 맞춰 다시 현관문을 나서야 했다.

KTX로 이동하며 아이는 편의점에 들러 산 과자를 먹었다. 차가 주차된 곳까지 가려면 광주 송정역에서 지하철로 환승 후에 다시 시내버스를 타야 했다. 배가 고파서 아이에게 저녁을 먹고 들어가지 않겠냐고 넌지시 물었다. 아이는 단호하게 집에 도착해 편안하게 치즈 라면을 즐기겠다고 말했다. 무언가 사서 입에 넣으며 운전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끼자며 서둘러 시동을 걸었다.


목적지에 도착해 아이는 원하던 치즈 라면을 먹고 나는 오트밀을 데워 먹었다. 국그릇에 오트밀을 부은 후, 만둣국 국물을 조금 넣고 호두 몇 알을 뿌려 전자레인지에 2분 조리하면 완성되는 훌륭한 식사다. 그릇을 싹싹 비우고 식사를 마쳤다. “이제 살겠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오늘 아이들의 저녁 메뉴는 시래기 국밥, 미트볼, 군만두, 깍두기, 멸치볶음이었다. 저녁은 가볍게 먹고 싶어 몇 주째 냉장고에 보관 중인 홍시를 꺼내 숟가락으로 베어 먹었다. 껍질에 붙은 홍시의 속살까지 싹싹 긁어모아 입에 넣었다. 아쉽지만 만족스러운 한 끼였다. 해야 할 일이 아직도 많이 남은 저녁이다. 누군가와 감정적으로 충돌도 했다. 답답한 속을 시원한 맥주로 씻어 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오늘은 아까 먹은 홍시로 마무리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내일 아침은 오늘처럼 빵 한 조각과 뜨거운 커피로 때울 테다. 무언가 일을 마친 후엔 혼자만의 성대한(?) 점심을 먹을 것이다. 오트밀과 방울토마토 몇 알, 마지막 남은 닭가슴살 한 팩이면 충분하다. 저녁엔 숟가락으로 홍시를 야무지게 파먹어야지. 난 그걸로 충분한데. 모두 자기 취향의 ‘충분한 한 끼’를 알아서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맛난 음식을 대신할 알약 한 알이 개발된다면 더할 나위 없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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