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처음 봤다. 친정부모가 김장하시는 모습을. 자식에게 알리지 않고 매년 두 분이 몰래 김장을 하셨다. 딸이 걱정할까 봐, 시가의 김장도 하러 갈 텐데, 우리라도 고생시키지 말자며 두 분은 그렇게 '몰래' 하셨다.
올해는 친정 부모의 '몰래 김장'에 비집고 들어갔다. 올해는 시가 '김장명절'엔 안 갔다. 친정부모님의 '몰래 김장'에 가기로 선택을 했다.(시가 쪽에서 욕해도 어쩔 수 없다. 이제라도 선택하고 싶었다. 내 행동을)
김장하는 날, 부랴부랴 가보니 벌써 무를 씻고 계셨다. 왜 이렇게 일찍 왔냐고 타박하셨다. 너 오기 전에 다해놓려고 일찍부터 하고 있었는데.. 라며 말끝을 흐리셨다. 내가 가야만 모든 일을 시작하는 시가의 상황과 반대되는 말이었다.
따뜻했다. 참 오랜만에 느꼈다. 추워야 더 맛있게 느껴지는 어묵 국물처럼.
'굳이 애쓰지 마셔. 내가 엄마보단 좀 젊잖아. 같이 하자! 뭐부터 하면 돼?'
무를 씻어 옮기는 엄마의 뒷모습은 흰머리가 많이 눈에 띄었고, 내가 남편 부모에게만 신경 쓰던 14년 동안 참 많이 늙어버리신 듯했다. 내가 부모를 방치(?)해서 생긴 흰머린 아니지만, 내 탓은 아니지만 왠지 내 탓같은 마음을 바지 주머니 속에 쑤셔 넣고 쪽파를 다듬었다.
두 분이 티격태격하신다.
'무를 더 사야지 왜 이것밖에 안 샀어? 이거 모자라면 어떡해?'
아빠가 투덜거리신다.
'그 정도면 되니까 그만큼 산 거지. 왜 매년 똑같은 소리여~ '
엄마가 아빠의 투덜거림을 툭 받아치신다.
다듬은 쪽파를 물에 씻고 있으려니 이차전 시작이다. 무에 대한 아빠의 생각은 여전히 뒤로 숨을 줄 모른다. 무를 열심히 채 썰다가 또 '무양'이 튀어나온다.
'무 양이 너무 적은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더 사 올까? 나 이거 금방 다 썰어'
'아이고 이 양반이 충분하다니까 그러네! 무양 김양 그만 찾아. 여기가 다방이여?'
그 말에 우리 셋은 낄낄, 큭큭거리며 아빠는 마저 남은 무를 채 썰고, 엄마는 고춧가루를 가져오신다. 이차 전도 이렇게 싱겁게 마무리됐다.
삼차전의 주제는 '고춧가루 양'이었고, 사차전은 김장양념에 넣을 '굴 양'이었다. 김장에 필요한 재료의 양을 두 분은 투덕투덕하시며 알아가고, 맞춰가고, 결정했다.
각자 자기가 맡은 역할을 하고, 그 역할을 하면서 무는 채썰리고, 양념은 섞인다. 간을 보면서 짜네 싱겁네 하며 서로에게 맞는 중간지점의 맛을 찾아간다. 두 분은 의견을 나누고 던지고 툭 걷어내는 동안, 양념된 김장배추가 쌓여갔다.
뼈를 보호하는 연골의 역할처럼 서로 칭찬도 하신다. 아빠가 저렇게 안 도와줬으면 김장할 생각은 아예 못했을 거라고. 그런데 저렇게 채 썰고, 그릇 옮겨주고, 배추도 옮겨주니까 올해도 김장할 생각을 했다고 하시며. 그러면 잠시 아빠는 조용해지신다. 칭찬은 좋지만 쑥스러운 듯. '무 양'이 아닌 '순한 양'이 되신다.
그렇게 서로 김장양념에 대한 양과 맛을 결정하시는 모습을 보니, 두 분이 힘드실 텐데 그냥 김치 사 먹으라는 말이 더는 안 나왔다. 나이 70을 바라보시는 두 분이 하나의 퀘스트를 수행하며, 서로의 생각을 알게 되는 게임이 김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두 분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하셨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자식 먹을 김치까지 안 줘도 되니까, 두 분이 감당할 만한 '양'을 찾으시길! 무양은 그만 찾으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