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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틀비와 함께 Sep 29. 2024

닐의 여정: 만물의 중심에서 나의 세계로

3번 여황제

여황제형 인물의 특징은 화려한 외모를 소유한 인물이다. 화려하다는 것은 외적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자기 생각을 잘 표현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이들의 외모, 행동, 언변에 매력을 느끼고 신뢰한다. 무엇보다 여황제형 인물은 가족 중심의 가치관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성장과 발전을 돕는 인물이다. 진정성 있는 관계 속에서 지도력을 발휘하고 예술, 자연환경, 사회복지 분야에 흥미가 있다. 


3번 여황제와 수비학적으로 연결된 타로카드는 12번 매달린 남자와 20번 세계이다. 12번 매달린 남자는 표면적으로 사형, 죽음, 희생을 의미하지만, 타로카드에서는 새로운 시각, 깨달음을 얻기 위한 인내와 희생을 의미한다. 여황제의 풍요로운 삶이나 환경이 완전히 뒤바뀐 상황을 상상해 보자. 어떤 사람은 좌절을 극복하지 못하고 죽음과 같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겠지만, 어떤 사람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로 생각할 수 있다. 현재 벌어진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여황제형 인간은 21번의 ‘세상’으로 진입할 수 있다. 


나는 여황제형 인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인물로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 1990)에 나오는 닐 페리(Neil Perry)를 다루려고 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는 1번 마법사인 키팅 선생님, 3번 여황제인 닐 페리, 그리고 2번 여사제 토드 앤더슨(Todd Anderson)처럼 자세히 다루고 싶은 인물들이 많다. 순서로는 2번 토드를 먼저 다뤄야 하지만, 서로가 받은 영향과 영감을 고려한다면 키팅 선생님과 닐을 먼저 이해한 후, 토드의 변화를 보는 것이 맞다. 


출처-다음 영화 이미지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닐은 전형적인 여황제의 모습을 띠고 있다. 어른들 말처럼 이렇게 잘 생기고, 착하고, 실력 있는 아들을 둔 부모는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를 것이다. 그런데 닐의 아버지는 이렇게 착한 자기 아들을 왜 믿지 못한 걸까? 아들을 통해 무엇을 원한 걸까? 

    

토드는 닐에게 “사람들은 너의 말을 귀담아듣는다”라고 했듯이, 닐은 같은 학생들 사이에서 친화력을 지닌 인물이다. 닐은 사려 깊고, 똑똑하며, 예술적인 능력이 뛰어나고, 무엇보다 부모님의 뜻을 따르는 학생이다. 하버드 의대를 목표로 하는 그의 단순하고 맹목적인 삶은 키팅 선생님을 만나면서 12번의 매달린 남자의 상황을 맞이한다.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처음 발견한 닐은 아버지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생각한다. 웰튼 학교에서 키팅 선생님의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가시화한 학생은 닐이 유일하다. 은행장 아들인 찰리도 적극적으로 ‘카르페 디엠’을 실천하지만, 그 방법이 내면의 성숙을 추구하기보다는 치기 어린 10대 소년의 반항으로 드러난다.      


여황제인 닐은 키팅 부모님의 엄격한 통제와 억압에서 억눌렀던 자신의 에너지를 연극 무대를 통해 발산한다. 닐은 연극 연습을 하는 동안, ‘카르페 디엠’을 느꼈고, 자신의 ‘시’가 무엇을 써야 하는지를 깨닫는다. 세상과 자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곧 그를 21번의 충만한 세계로 이끈다. 학생으로서 마을 공연에 오르는 작은 연극이지만, 그는 그 어떤 상보다도 만족감과 희열감을 만끽한다. 그의 삶은 여황제, 매달린 남자, 그리고 세계로 진입하는 일련의 과정을 겪는다. 


출처-다음영화 이미지

그러나 그의 전체 여정은 아버지가 상징하는 사회의 기대와 상충하며 매달린 남자에서 다른 결과를 맞이한다. 극장에 찾아온 아버지를 보자마자 얼어붙은 닐은 마치 아버지에게 하듯이 마지막에 대사를 읊는다.      


만약 우리 요정들이 기분 나쁘게 해 드렸다면 이건 모두 꾸며진 일이라고 생각하세요. 여러분들은 단지 이런 일들이 보여질 동안 존 것뿐입니다... 여러분 저희를 꾸짖지 말아 주세요. 만약 용서해 주신다면 고치겠습니다. 저는 정직한 퍽이에요.... 저희를 도와주신다면 우리는 친구가 될 것입니다.    

닐은 자신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알지만, 또한 그의 부모님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이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현실과 꿈을 어떻게 조화롭게 이뤄야 하는지를 아는 인물이기에 아버지에게 자신의 일탈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 “저희를 도와주신다면 우리는 친구가 될 것입니다”라는 마지막 말은 닐이 아버지에게 전하는 부탁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웰튼 고등학교보다 더 엄격한 학교로 닐을 전학시킬 계획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용서보다는 벌을 가한다. 누가 닐의 아버지를 비난할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의 확고한 결단과 통제가 아들을 위한 것이라고 믿었다. 다른 생각, 꿈을 인정하지 않은 그의 고집은 결국 현실 속에서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잃게 만든다.      

  

나는 닐의 자살이 그의 꿈을 찾아 떠나는, 즉 21번 세계에 들어가는 유일한 길이라든지, 억압받은 자의 유일한 선택으로 해석하고 싶지 않다. 키팅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왜 그랬을까 별별 의문이 다 든다. 왜 그랬을까? 당신은 닐이 왜 그랬을 것 같은가?      


조심스럽게 이야기해 보자면, 닐은 더 이상 부모님의 양육이 자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 같다. 자기 뿌리인 가족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고립된 닐은 매달린 남자의 극단적인 상황을 경험한다. 자신의 세상이 모두 무너지면서 닐이 느꼈을 공포, 슬픔, 외로움이 너무 아프게 다가온다. 친구와 키팅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해 봤자, 자신은 결국 아버지의 뜻대로 전학을 가야 할 운명임을 깨달은 닐은 그 운명의 족쇄를 끊을 유일한 방법으로 자살을 선택한다.      


닐의 선택은 부모님, 학교, 키팅 선생님, 친구들에게 서로 다른 영향을 준다. 부모님과 학교는 닐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이해하기보다는, 자살의 책임 소재만 밝히려고 한다. 반면에 키팅 선생님과 친구들은 닐의 자살이 아니라, 그가 연극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려 했던 노력, 꿈을 향해 보여준 용기, 그리고 자유를 만끽한 그의 찬란한 미소를 기억한다. 특히 소심하고 자기표현에 서투른 토드는 마지막에 키팅 선생님에게 ‘오 선장님, 나의 선장님’이라고 외치면서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겠다는 닐의 메시지를 대신 전한다.     


닐의 죽음이 교훈을 주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단지 그의 삶의 여정이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남겼다고 표현하는 것이 조금 더 적절할 것 같다. 닐의 마지막 타로카드인 21번의 세계는 키팅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자유, 주체적인 삶, 상호 신뢰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렇다면 닐의 아버지는 어떠한가? 아들의 죽음을 통해 닐의 진정한 욕구와 꿈을 뒤늦게나마 깨달았을까? 아니면 여전히 키팅 선생님을 원망할까? 우리는 그 답을 알 수 없지만, 닐의 아버지가 더 일찍 아들의 목소리를 들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건 알 수 있다. 부모와 자식, 선생과 학생이라는 관계 속에서 단순한 의무감과 기대를 넘어서, 서로의 진정한 욕구와 꿈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믿음을 쌓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우리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침묵으로 사라지기 전에 그들의 진심을 듣고 지지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바로 나의 목소리일 수도 있다는 점 역시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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