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와 맞지 않은 애플 키노트
애플 키노트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애플 맥킨토시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 회사에서는 윈도 기반의 PC를 사용하고 있다. 이유는 디자인 부서뿐만 아니라 모든 유관부서와의 자료 공유가 원활해야 하며, 모든 업무 시스템이 익스플로러 기반으로 원활하게 동작하며, 특히 보안 프로그램이 윈도용으로 맞춤 제작이 되어있기 때문에 디자인 부서에서 맥킨토시 요청은 매우 힘든 일이다. 회사 초기에 나는 애플 키노트로 뭔가 대단한 일을 해보겠다고 굴러다니는 샘플 용도로 구매한 애플 맥북에 애플 키노트를 설치한다.
위와 같은 환경에서 굉장히 희귀한 애플 키노트를 동작할 줄 아는 사람들이 드물다. 게다가 대다수의 사람들은 애플, 키노트, 맥북, 심지어 iOS까지 애플과 관련된 언어들은 모두 "어렵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예전에 그 희귀한 애플을 다뤘던 사람을 연관 짓게 되며, 그 사람은 영원히 키노트 담당자로 지정된다.
회사 특성상 보고서는 내 의견이라기보다는 상사의 의견들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에 수정해야 할 일들이 굉장히 빈번한데, 애플 키노트로 작성이 된 경우 상사들은 애플 키노트를 수정할 수 없을뿐더러, 애플 맥북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애플 키노트로 작성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애초에 애플 키노트는 고 스티브 잡스(이하 잡스라고 한다)를 위한 애플리케이션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애플 키노트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스티브 잡스와 애플의 키노트 디자인 스타일을 다시 한번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이전에 포스팅한 적이 있기 때문에 해당 내용은 아래 글을 확인해보기 바란다.)
여기서 회사에서 창립 이후 유지해온 디자인 포맷이라는 것과 부딪치게 된다. 통상 회사 프레젠테이션은 실제 데이터 위주의 복잡한 프레젠테션일 경우가 많다. 원활한 소통(?)의 회사생활을 장려하기 위해서 과도한 프레젠테이션 구성과 디자인은 삼가는 게 지침이긴 하지만, 과도하게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내용을 시와 같이 축약해야 하는 과정이 발생하고, 이러한 좋은 지침이 슬라이드 한 장에 모든 내용을 마무리하라는 뜻은 아닐 텐데 도무지 한 장의 슬라이드 위에 올라갈 것 같지 않을 내용을 무리하게 얹히다 보면 슬라이드는 수많은 텍스트의 홍수 속에 a4용지에 써져야 할 내용들이 슬라이드에 빼곡히 작성되어 프레젠테이션 되는 게 현실이다.
(좌) 스티브 잡스 디자인 스타일 vs (우) tvN 미생 한 장면
물론 이러한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애플 키노트의 효과적인 사용은 절제된 내용, 스토리텔링으로 구성된 프레젠테이션에 매우 적합한 툴이기 때문에, 위와 같은 텍스트가 주가 되는 프레젠테이션 환경에서는 절대로 사용할 수가 없다.
그래도 애플에 대해서조 금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애플 키노트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고, 열에 아홉은 애플의 화려한 애니메이션 효과에 대해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내가 키노트 예찬을 하고 다니니, 몇 년 전 파워포인트로 작성된 문서에 애플의 키노트의 시네마틱 한 효과만을 넣자고 제안하는 분들이 있었다.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속이 참 타들어갔던 기억이다. 키노트의 시네마틱 한 애니메이션 또한, 위 세 번째 언급한 것에 연장선으로, 긴 텍스트들이 주가 되는 우리 회사의 프레젠테이션에서는 사용하면 독이 될 수 있다.
애플 키노트는 화려한 애니메이션 효과들이 많지만, 적재적소에 적절하게 사용이 되어야 이득이 된다. 프레젠테이션에서는 흐름을 깨지 않는 것도 중요한데, 잘못 사용된 애니메이션의 경우 이 흐름을 상당히 방해할 수 있다. 애플의 신제품 발표나, 개발자 포럼에서 키노트를 하는 화면을 자세히 보면 이러한 애니메이션을 굉장히 절제해서 필요한 곳에서만 사용하는 이유가 바로 이 이유일 것이다.
나는 디자이너다. 나는 '좋은 것을 보여주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상황이 이러할지라도, 가득한 텍스트들을 덜어내고, 스토리로 프로젝트를 풀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 회사에도 애플 맥킨토시 + 키노트로 작업을 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