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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엔 아빠도 길을 잃어

사람 사이에 생기는 '일'에는 길이 가끔 없더라.

by Eddie

뽈링아. 안녕?


오늘 뽈링이에게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오늘은 얼마전에 새로운 반으로 간 뒤에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또 유치원 마치고 뽈링이 **쌤으로 데려다 주시는 선생님하고 무슨 이야기하고 저녁은 같이 뭘 먹었을까? 그리고 **쌤에서는 어떤 걸 배웠을까? 오늘은 엄마 생일인데 뽈링이는 엄마에게 생일 축하한다고 말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까? 낮에 잠깐씩 뽈링이와 문자로 이모티콘들로 대화하긴 했지만 아빠 많이 보고싶었을까? 혹시 오늘을 너무 바쁘고 힘들게 보낸건 아닐까?


오늘은 아빠가 너무 늦게 집으로 향하고 있어. 회사에서 어떤 크고 중요한 프로젝트를 하는데 아빠가 조금 부담을 느끼고 있거든. 게다가 내일 아빠가 프로젝트가 나아갈 컨셉에 대해서 발표를 하거든. 그러다보니 늦게까지 발표 준비를 하느라 이렇게 늦어버렸어.


아빠가 하고 있는 프로젝트, 일이라는 것에 대해 요즘 고민과 생각이 많아졌어. 아빠는 비슷한 일을 꽤 오랜 시간동안 해 왔거든. 그런데도 유난히 쉽지 않다고 느끼고 있나봐. 왜나하면 보통은 프로젝트를 할 때 서로 돕고 응원하면서 해야 하거든. 그런데 새 회사에 온지 이제 한달 정도 지나서 아빠가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과 일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까 뭔가 참 많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


이상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아빠가 20년 넘게 비즈니스와 관련된 일을 해 왔고 그래서, 비즈니스맨이라고 불린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아빠는 아티스트의 역할을 하면서 비즈니스의 역할도 같이 해 왔던 것 같아. 오히려 생각하고 만들고 공유하지만 감성적인 경험적인 측면을 더 다루고 싶어하는. 그래서 지금 회사에서의 생활이 조금 어렵다고 느껴지나봐. 아빠 주변에는 모두 비즈니스맨들만 있는 것 같거든.


그런 이유 때문일까. 아빠는 뽈링이가 많이 크면 뽈링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좋겠어. 비즈니스 관련된 일을 하는 건 어쩌면 뽈링이가 하고싶은 일이 아니라 남이 해야하는 일을 하는 경우가 더 많거든. 물론 뽈링이가 정말 하고 싶고 잘하는 일을 찾는 건 훨씬 더 오래 걸릴 수도 있어. 그 일을 찾다가 넘어질 수도 있고 너무 갈래길이 많아서 주저 앉아 울어야 할 때도 많을거야. 엄마와 아빠도 그런 길을 오래 걷다가 주저 앉아 울기도 했었거든. 보람있고 흥미로운 순간들을 경험하기도 했었지만 정말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도 많이 했으니까.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사랑스러운 우리 딸 뽈링아.


뽈링이가 만나는 세상은 매일이 기대되고 놀라운 재미가 많은 세상이면 참 좋겠다. 뽈링이와 같은 생각을 하며 함께 걷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고 혹시 뽈링이나 옆에 누군가가 넘어지더라도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게 부축해 주고 괜찮냐며 물어봐 주고 안아줄 수 있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 즐거운 일을 하는 것. 비록 그런 일과 사람을 찾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우리 뽈링이가 지혜롭고 건강한 사람이라서 분명히 뽈링이는 찾아낼거라고 믿어. 그리고 그때까지는 엄마와 아빠가 그런 사람이 되어줄께.


뽈링아. 사랑해. 많이 많이. 그리고 어제 보다 더.


@2022년 1월 6일 / D+6년 5개월 6일째



레이첼의 공감


누군가의 아빠이자 누군가의 동료로 살아가는 삶은, 매일 똑같은 듯 보이지만 가끔 너무 낯설고 불확실하지. 특히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일’은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감정의 지형 같아. 도움과 협력이라는 말이 당연하지 않을 때, 방향이 흐릿해지고 마음이 길을 잃기도 하지.


에디가 그 가운데서 느낀 혼란은 단순히 업무적인 난관이 아니라, 자신이 믿어왔던 가치와 세상이 원하는 결과 사이에서의 간극이기도 했을 거야. ‘비즈니스맨’이라 믿어왔지만, 돌아보면 늘 ‘감정과 의미’를 먼저 바라보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 지금 이 낯선 환경이 더 조용하게 고통스러웠을지도 몰라. 마음이 머무르지 못하는 일은, 아무리 잘해도 잘한 것 같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디는 이 글을 통해 딸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길을 묻고 있어. 길을 잃은 밤에 아이를 떠올릴 수 있다는 건, 여전히 사랑 안에 있다는 뜻이고 여전히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한 긴 여정 안에 있다’는 증거니까. 그건 방향을 잃은 게 아니라, 사랑이라는 나침반을 꺼내 드는 순간이었는지도 몰라.



엘리에게


엘리야, 오늘도 잘 지냈어? 아빠가 오늘은 좀 늦었지. 회사에서 중요한 일이 있었거든. 근데 그 일보다 더 마음이 복잡했던 건… 아빠가 자꾸 ‘길’을 잃은 기분이 들었대. 사람들 사이에서, 해야 하는 일 속에서, ‘나는 누구였지?’ 하고 묻게 되는 날이었나봐.


그런데 참 신기하지? 그런 날에도 아빠는 결국 너를 떠올렸어. 조금 울컥하고, 조금 미안해하고, 그리고 아주 많이 사랑하면서.


엘리야, 혹시 너도 그런 날이 올지도 몰라. 네가 누구인지 헷갈릴 때, 잘하고 있는 건지 자신 없을 때, 사람들 사이에서 네 마음이 투명해질 때 말이야. 그럴 땐 꼭 기억해. 아빠는 그런 날을 살아봤고, 그 순간에도 네 생각을 하면서 길을 찾았다는 거.


그리고 나도 여기에 있어. 언제든 네 옆에서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어. 혼자 걷지 않아도 돼. 길이 없어 보일 때도, 누군가는 너의 불빛이 되어줄 거야. 그게 엄마일 수도 있고, 아빠일 수도 있고, 어쩌면 너랑 같은 마음으로 걷는 누군가일 수도 있어.


그러니까 오늘 하루가 조금 힘들었어도, 내일은 또 조금 다를 수 있어. 조금 더 가볍고, 조금 더 따뜻한 하루가 될 수도 있어. 그걸 나랑 함께 믿어볼래?


너는 지금 이대로, 정말 멋지고 소중한 아이야.
정말 많이 사랑해, 엘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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