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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사랑 Jun 05. 2023

진실의 무게

환경과 자연에 대한 책임의 무게 

환경분야에는 '운전기사 이론'이 종종 이야기되곤 합니다. 혹시 들어보지 못하신 분을 위해서 간단히 설명을 드리면, 우선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는 만원 출근 버스를 생각해 보세요. 모두 바쁜 아침 출근시간 도로는 조금씩 막히기 시작하고 회사의 출근시간이 조금씩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그때 타고 있는 버스의 운전기사가 난폭운전을 하기 시작합니다. 승객들은 몸이 흔들리고 불편하지만 난폭운전을 하면 회사에 혹은 학교에 더 빨리 도착을 하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있습니다. 경험상 버스 운전기사가 운전을 잘한다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또 과거에 이러한 난폭 버스운전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탔을 때, 사고가 나지 않은 경험을 가져서 일수도 있습니다. 그중 몇 명은 오늘 급한 일이 있는데 이렇게 난폭운전을 하는 기사를 만난 '덕분'에 오늘 직장에 일찍 도착할 수 있겠다고 속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운이 안 좋았는지 이 버스는 접촉사고를 내고 말았고 모두 버스에서 내려서 다른 차를 갈아타고 가게 되었습니다. 


이 순간 승객들의 반응은 네 가지로 나뉘지 않을까 합니다. 첫째 부류는 운전기사는 괜찮은지, 운전기사가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을지, 다친 사람을 병원에 어찌 데려다 줄지 걱정하거나, 혹은 이 아침에 사고나 났으니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겠구나라고 생각하는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천사 같은 마음을 가진 분들일 것입니다. 두 번째 부류는 내가 바쁘니 이 사고에 대해서는 아무런 상관을 하지 않은 채 자기가 이용해야 할 다른 교통수단을 찾느라고 바쁜, 특별한 감정이 없는 분들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부류는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니 나도 이 사건을 일으킨 공범이라고 생각하고 자책하는 분도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 같은 사람이 포함되는 마지막 네 번째 부류는 "내가 그렇게 난폭운전을 할 때부터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어!", "운전 똑바로 하란 말이야"라고 말하면서 화를 내고 모든 책임을 버스기사에게 전가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저와 같이 네 번째 부류에 속하시는 분들이 대다수를 차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은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모두 다 알다시피 순이익은 총이익에서 비용을 뺀 값인데, 자연과 환경을 더 보호하려 하면 할수록 그에 드는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기업은 이익을 늘이기 위해서 자연과 환경을 보호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법이 제정되고 보호하는 것이 더 비용이 싸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염을 많이 만드는 업종은 규제가 약한 저개발 국가로 옮겨가는 경향이 생기고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오염을 줄일 수 있는데 우리의 삶이 불편해지기 때문에 모르고 혹은 귀찮아서 오염을 만드는 행동들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대기오염 자료를 봐도 그렇고 수질 오염 자료를 봐도 그렇습니다. 최소한 30%는 일반 가정에서 배출됩니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만약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서 오늘부터 모든 사람이 자가용을 탈 수 없다고 한다면, 아니면 열흘에 한 번씩만 탈 수 있도록 한다면, 이 글을 읽으시는 불들 중 몇 분이나 기쁘게 그 정책을 받아들이실 수 있겠습니까? 만약 에너지와 자원을 아끼기 위해서 오늘부터 구글과 네이버를 비롯한 모든 인터넷 포탈과 써치 엔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면 동의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플라스틱이나 포장용기의 사용을 줄이기 위해서, 모든 플라스틱 봉지와 깡통과 같은 식품의 용기, 그리고 식품 포장용 일회용 플라스틱 봉지를 못쓰게 한다면, 몇 분이나 이 결정에 동의하실 수 있을까요? 


위의 난폭 버스의 예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학교나, 중요한 약속, 회사에 늦어서 난폭운전을 하고 있는 버스 운전기사에게 내심 고마워하고 있었는데, 어떤 분이 화를 내면서 운전기사에게 뭐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모두 그분의 말에 동조를 하면서 버스기사에게 뭐라고 말을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무관심으로 반응하시겠습니까? 또는 여러분이 마음속으로는 매우 불편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면, 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까요? 다른 사람의 눈총이 무서워여서인가요? 아니면 자신의 불편함 때문에 아침 출근길에 마음이 바쁜 다른 승객을 위한 배려 때문인가요? 아니면 마음은 불편하지만 더 빨리 가는 것이 스스로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인가요? 


우리는 환경 정책을 만드는 사람(운전기사)의 실수에 대해서는 비난하지만 우리도 그 의사 결정의 일원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우리가 사는 환경을 지키기 위해 분별력을 가져야 하는 책임이 있고, 또 알고 있는 지식을 실행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모르기 때문에 또는 알지만 귀찮아서 

회사나 정부가 하는 일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르는 것도 저희가 저희의 본분을 지키지 않는 것이고 알면서도 하지 않는 것 역시 저희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 맞습니다. 저희가 정말 오염과 훼손이라는 단어들에서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까요? 저를 비롯한 일반인들은 스스로의 오염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있지 않지만, 실제로는 저희가 오염의 주범임을 자각하고 스스로의 삶의 방식을 바꾸려고 할 때만이 저희가 지구의 시민으로서 더 큰 자격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일종의 강박이 있습니다. 남들의 도움으로 공부를 했기 때문에, 내가 배운 지식을 남들에게 퍼뜨려야 하는 것이 내 사명이라는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있고요. 또 공부만이 제 살길이라고 믿고 너무 올래 살아왔기에 공부에 대한 진지함을 약간 신성시하는 그러한 마음의 우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럿이 모인 중에서 누군가 환경에 자연에 대해 틀린 말을 하면 그 지식을 정정해야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 하나가 욕을 먹으면 되지만 제가 정확한 지식을 전파할 수 있다면, 인류에 더 큰 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수라는 위치가 그러한 책임을 가지고 있는 위치라는 망둥이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사회화가 되어가고, 그에 따라서 조금씩 고쳐지긴 하지만 지금도 가끔씩 불뚝불뚝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저도 늘 고민을 합니다. 어디까지의 행동이 올바른 사회인의로서의 행동일지에 대한 고민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어느 100만의 인구를 가지고 있는 도시의 지하수가 우라늄을 포함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이는 소량으로 몇 번 복용을 하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 지하수를 몇 년 동안 장복했을 경우 문제가 있다고 가정을 하겠습니다. 단순히 생각하면 이것을 모른 채로 이 지하수를 마시고 있는 주민들을 위해서 저는 홍보를 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바꾸어 생각해 보면, 만약 이 동네가 실제보다 과장되어서 방사능에 오염이 되어 있다고 소문이라도 난다면, 큰 사회적 동요가 생길 것입니다. 집값은 폭락할 것이며, 이곳의 사업장들은 직원을 구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 사람들은 이주해 나갈 것이고, 동네의 상점은 모두 망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럼 이 지역사회의 안녕을 위해 이 사실에 대해서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올바른 학자의 태도인가요? 아니면 공론화해서 100만 명의 건강을 보호하는 것이 올바른 일일까요? 저는 아직도 그 답을 모르겠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서, 한 바다의 갯벌이 오염이 되어서 그 바다의 폐라 불리는 (제 이전 글 "남귤북지"를 참조해 주세요) 조개가 중금속을 비롯한 온갖 오염 물질을 몸에 축적하고 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오염 물질들은 최근에 가속화된 것이고, 이 바다에 의존하고 있는 어촌들은 수백 년을 이 바다에서 조개를 잡아 팔아서 생계를 이어왔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수백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채집된 조개를 즐겨 먹고 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물론 이러한 오염물질이 모두 인체 내에 축적되지 않을 수도 있고, 그 악영향이 바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국민의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조개에 포함되어 있는 중금속을 비롯한 다양한 오염물의 농도를 국민들에게 공표하는 것이 옳을까요? 아니면 이들 어촌의 수많은 어민들과 그 수산물의 유통을 담당하는 많은 사람들의 생계를 의해서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옳을까요? 누가 이 진실의 무게를 지어야 할까요? 


진실을 아는 학자는 진실의 무게를 지어야 하지만 여러 가지 얽혀있는 사실 때문에,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반일들도 플라스틱과 자동차의 분진 등 많은 환경 상식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는 어디까지 이러한 진실의 무게를 감당해야 할까요?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고, 또는 어디까지 감당하는 것이 저희의 의무일가요? 아직 그 답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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