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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st Writer Oct 28. 2021

시월 햇살의 향기


10월의 버스정류장에서


오랜만에 한강의 남쪽으로 발걸음을 옮긴 날. 평일 오후의 한적한 버스, 차창 열린 틈으로 가을의 내음이 물감처럼 스며들었다. 마치 얼음 녹은 봄날처럼 부푼 향기가 어디에서 오는지 나는 몰라서, 그냥 햇살의 향기라고 부르기로 했다. 빛의 향기라니, 과학적으로는 말이 안 되지만, 뭐 어쨌든.


한강대교를 지나 다시 종로로 돌아왔다. 평일인데도 도심은 마스크를 쓴 채 모인 군중들, 경찰들로 북적인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다. 눈앞의 서울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멀리서도 쉬이 드러나지 않는 희극에 가끔은 마음이 무거워온다.




진짜 4월의 풍경


요즘엔 아름다운 것들을 주로 눈에 담고, 좋은 생각만을 채우고 싶어서, 많은 것들과 거리두기를 한다. 오직 단 하나, 시월 햇살의 향기만 빼고. 그것만이 얼굴에서 가깝다.


동네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와 창문을 열고 잠시 눈을 감아본다. 햇살은 닫힌 눈꺼풀 사이로 기어이 눈부심을 전한다. 시원한 듯하면서도 살짝 쌀쌀한 피부의 느낌. 겨울을 지나 마치 개나리가, 라일락이, 아카시아가 소리 없이 다가온 사월이라는 착각을 하곤 한다. 매년 그렇듯, 쉬운 착각 속에 머무르고 싶은 시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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