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빼고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선영이에게

by 새벽숲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뭐든 나쁜 짓 다해 괜찮아!
다른 사람 목숨 뺏는 거 말고는 다 괜찮아
그러니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죽지 말자



생각해 보니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했던 시절이 있었다. 생각해 보니 죽기 위해 히말라야에 올랐었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지금이 나에게 제일 행복한 때 이다. 너무 많은 것을 이루었다. 그토록 오랜 시간 어둠 속에 갇혀있던 내가 이렇게나 성장했다. 비록 조울증진단을 받았고, 스스로를 보살피는 건 너무 어렵다고 바닥에 뒹굴고 웅크리고 앉아 한숨을 쉬며 아이처럼 엄마를 찾는 울증에게 가까스로 달래 약을 먹이고 잠이 오지 않아 모니터 앞에 앉아 오래전 심장에 박힌 죄책감을 끄집어내고 있지만


난 죽을 자신이 없던 걸까 죽고 싶지 않았던 걸까. 죽는 것조차 귀찮았던 무기력 상태였다는 게 맞을 것이다. 삶에 대한 의지가 없지만 죽음에 대한 의지도 없었다.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재능이었다. 누군가를 해칠 힘이 없다기보다 그렇게 타고나지 않았다기보다 귀찮다. 타인을 해치는 건 너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매우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하던 그 시절의 나는 ' 너 그냥 그렇게 죽은 듯이 있느니 뭐라도 저질러라 그동안 하지 못했던 거 다 해라. 네가 그동안 안된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 목숨을 빼앗는 거 말고 뭐든 허용할 테니, 너에게 마지막 기회를 줄 테니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 그래 감옥에 가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감옥에 가면 살 수 있을 거 같았다. 어릴 적 화장실에 가두고 괴롭혔던 동네 악동들 때문에 울면서도 그 아이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던 천사 같던 아이의 본성을 갖고 있는 인간에게 남을 해치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할 수 있는 한 이기적으로 행동하려고 했고. 남의 기회를 뺏고 감사해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독설을 퍼부었다. 가끔 저주를 할 때도 있었다. 저주라는 건 돌고 돌아 나에게 와서 박힌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죽이는 것보다 내가 죽는 것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말 다하며 최선을 다하며 나름 악하게 살았다. 사랑하지 않고도 사랑하는 척 연기했으며, 뻔뻔하게 살아갔다. 그렇게 살아갔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이야기한 날이 생각해 보면 조증을 불러일으킨 날인지도 모르겠다. 살려고, 죽고 싶지 않아서, 혹은 어차피 곧 죽을 건데 라는 포기의 심정으로


그렇게 살아갔으면서 그때 왜 선영이에게는 그렇게 말하지 못했을까. 무의미한 존재였던 나는 한때는 선영이의 삶을 대신해서 살아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었다. "죽고 싶으면 그렇게 해" 습관처럼 죽고 싶다고 말하는 너에게 그렇게 이야기한 것의 벌로 난 네 남은 삶을 대신 잘 살아내겠다고 결심했었고, 잘 살려고 노력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영악하게도 너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이용하며 회피하기도 했었다. 네가 나 때문에 죽었다는 생각을 했다면 살아갈 수 없을 테니까. 그러면서도 가끔 술에 취하면 난 살인자라고 농담처럼 사람들에게 고백했다. ”말 한마디로 사람을 죽였어요. “ 너를 죽게 한 건 정말 나의 말 한마디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난 너를 살릴 수 있는 존재였다는 건 분명하다. 그때 네 옆에 내가 있었다면


선영아 난 억울했다. 서울에서 꿈을 좇으며 의식주를 해결해 나가는 일은 나에게 너무 가혹했어. 난 돈을 버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었거든 닥치는 대로 알바를 하고 간신히 입에 풀칠을 하고 살아가는 나는 언젠가는 꿈을 이룰 거라고 정신승리를 하며 살아내고 있었어. 그래서 억울했다~ 평온하게 의식주가 해결된 공간에서도 불평을 쏟아내는 너를 보면 말이야. 난 누군가 나에게 당장 집을 주고 밥을 주면 영혼이라도 팔 것 같은 기분이었거든 선영아 너의 아픔을 돌보지 못해서 미안해 죽고 싶다고 습관적으로 말하는 네가 죽을 자신은 있는 건지 한심하게 보였어. 난 당장 월세를 걱정하며 꿈에서 멀어지는 내 젊음을 불태우고 있었는데 넌 죽음타령이라니 선영아 근데 요즘 네가 이해가 된다. 큰일이야. 너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나의 이삼십 대를 갈아엎었는데, 이젠 죄책감은 사라진 줄 알았는데 요즘 자꾸 네가 생각이 나네 선영아 늙음은 또 다른 가혹함이 기다리고 있더라. 넌 겪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렇다고 해서 굶던 시절보다 힘들지는 않아 참을 만은 해 네가 끓여줬던 미소장국이랑 카레가 생각이 나네 나중에 만나면 끓여주라 감태도 얹어줘


다시 너를 만난다면 이번엔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어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뭐든 나쁜 짓 다해 괜찮아!
다른 사람 목숨 뺏는 거 말고는 다 괜찮아
그러니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죽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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