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J 조울증환자
출근시간이 다가온다. 일하는 곳까지 가는 여정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멀게 느껴진다.
두 가지 일을 하고 있다. 한 가지는 내가 없어도 될 거 같아 우울증이 심했을 때 정리하려고 했는데 다행히 잘리지 않고 재택으로 돌려서 하는 중이고 한 가지 일은 내가 없으면 안 되는 일이라서 꾸역꾸역 뿌리 깊은 바위를 달고 있는 것 같은 발을 들어 올려 일터로 향한다. 출근을 하기 위해서는 씻어야 한다. 씻고 나가면 되는 단순한 일이 단순한 일이 아니게 될 때 무기력에 빠졌을 때가 우울증 기간이다. 내가 경미한 우울증이라고 스스로 여겼던 이유가 여기 있는데 삶을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여러 요소 중에 100%를 모두 수행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간혹 출근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였다. 일단 일을 하러 가면 다른 사람인 것처럼 퇴근 시간까지 훌륭히 연극을 해내고 집에 온다. 첫 진료 때 선생님께 이렇게 이야기하니 우울증에도 종류가 많이 있고 나는 우울증이 맞다고 했었다.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 이후 조울증으로 진단이 바뀌었다. 깊은 우울증 기간을 지나 아직 복구가 안된 부분이 있는데 서류를 읽거나 작성하는 일이다. 메일을 열 수가 없다. 파일을 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메일을 여는데까지 성공은 하는데 파일을 다운로드하여 여는 순간 그 안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나와 나를 잡아먹기라도 할 것처럼 다음단계를 할 수가 없다. 나라는 존재가 사라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무도 모르게 나만 사라져 봤자. 세상은 고요하겠지만. 사업을 하며 정리하지 못한 몇몇 가지 일들을 아직도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다. 우습고 역겹고 한심하고 답답하다.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고 눈은 작동을 안 한다. 할 수가 없다. 한동안 창문을 열 수 없었고 씻을 수 없었던 것처럼 서류를 읽을 수가 없다.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서 앉는다. 이미 출발해야 하는 시간이 지났다. 지각을 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화장실에 앉아 거울을 보며 중얼거린다. '오늘도 또 늦는 거니? 조금만 일찍 서두를 수는 없던 거니?' 다그치듯이 차가운 눈으로 쏘아본다. '아니야 아직 시간은 넉넉해 왜 다그치니? 아직 지각한 것도 아닌데 괜찮아. 잘하고 있어. 이렇게 일어나고 씻으려고 하는 것, 출근준비를 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대견해 괜찮아' 이렇게 다독이듯이 말을 한다. 한 가지 상황에 두 가지 이상의 생각이 교차하는 것은 늘 있는 일이다. 한 가지 더 떠오르는 날을 난 사이코라고 부른다. '지금 이 상황을 영화로 만들면 화면은 어떻게 전환되고 대사는 어떻게 치고 스토리는 앞으로 이런 식으로 진행되면 되겠군' 변기에 앉아 있는 내 존재를 저 멀리 에서 내려다보듯이 중얼거린다.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에 앉아 거울을 보는 5분도 안 되는 시간에 최소 3가지의 생각이 떠다닌다. 그야말로 생각이 떠다니는 상황은 자주 있는 일이다. 첫 진료를 한 후 감정은 에너지와 관련이 있다고 하신 말을 떠올리며 생각을 떠다니게 하는 것을 줄이려고 노력 중이다. 생각하는 것은 에너지 소모가 많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생각이 많고 상상력이 풍부한 NF가 생각을 멈추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생각을 멈추기 위한 에너지를 또 써야 한다. 생각을 멈추기 위한 에너지를 또 쓰느니 그냥 생각이 떠다니게 하는 편이 덜 소모적인 것인가?
길을 나선다.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은 멀고 험난한 여정이다.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인간들은 나의 인내심을 자극한다. 화를 낼 수 있다는 것 또한 감사한 일이다. 무언가에 반응을 할 수 있는 상태, 매우 정상적인 상태가 그리운 날들을 경험하고 나면 더욱 그렇다. 길 한복판에서 담배를 피우면 길을 건너 돌아서 간다. 담배 냄새가 역겹다. 간혹 골목길 한복판을 갈지자로 걸으며 담배를 피우는 인간들이 있는데 그 인간들은 정말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내 안의 모든 폭력성을 끌어모아 피는 담배를 뺏어 입을 강제로 벌리게 하고 혀에 지져 끄는 상상을 하며 지나간다. 난 혹시 폭력성이 내재되어 있는 인간인가? 다행히도 실제로 행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상상은 정상이라고 한다. 약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그런 상상은 줄어들고 있다. 다음 주 화요일에 진료가 또 있는데 선생님이 무척이나 기뻐할 소식들을 들고 갈 예정이다. 내가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도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동생은 종종 내가 무섭다고 한다. 조증으로 추정되는 시기의 나는 에너지가 너무 넘쳐서 주변에서 두려워한다. 며칠 전 동생생일을 맞아 함께 밥을 먹었는데, 조울증 진단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언니는 정말 결정한 걸 해버릴까 봐 무서워'라고 했다. 의지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다고 엄마는 항상 말씀하셨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가 당연하다고 산증인이라고 그러셨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고 아빠는 항상 말씀하셨다. 꾸준함으로 재능을 이기는 다양한 경험을 이야기해주셨다. 미술을 전공하는 일은 매번 하나의 세계를 탄생시키고 멸망시키는 일이었다. 그러니 못할 것은 없다. 안 하는 것일 뿐 조증의 나는 그렇게 행동했었다. 나의 눈빛은 가끔 너무 서늘하다. 삶에 대한 의지가 없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쥐뿔도 모르면서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할 때도 있다. 그건 세상에 대한 미련이 없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오만으로 가득 찬 내 뇌를 시궁창에 던져 밟아버리고 싶은 날도 많았다. 난 겸손한 사람들을 동경하면서도 겸손하지 못하다. 말도 안 되지만 혹시 나는 사실은 거대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방어기제로 거대하게 나 스스로 까지 속이고 조울증인 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깊은 곳에 괴물 하나가 앉아 히죽히죽 웃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원하는 꿈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은 모든 것들은 견딜만하고 모든 두려움은 없는 것은 아닐까? 내 안을 계속 들여다본다.
난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평범하고 단순한 사람은 싫었다. 사랑받기 위해서는 싫증 나지 않게 해야 한다고 어릴 적부터 본능적으로 학습되었다. 난 사랑 받고 싶었으며 단지 애정결핍으로 인해 우울증이 생긴 것일까? 받고싶은 애정의 총량과 받을 수있는 애정의 총량이 사람마다 같을 수는 없는데 그럼 모두 일종의 애정결핍을 갖고 있는것은 아닐까? 오늘은 시간표를 짰다. 앞으로 계획적인 삶을 살아보려고 한다. 브런치의 글은 두서없이 초고를 써놓았다가 정돈해서 올려야지 해놓고는 촉박하게 그냥 올린다. 점점 나아지리라 믿는다.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기록으로 생각하자고 계속 다짐한다. 위선이다. 나를 위한 글인 양 올리지만 누군가 봐주고 공감해 주길 바라서 이곳에 기록을 한다. 위선자. 살고 싶지 않다가도 미친 듯이 살고 싶어지는 위선자. 조울증환자가 위선자라면 모든 위선자들은 조율증 환자인 것일까? 정상범주안에 있을 때만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에 내가 깊은 우울증이 있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를 수밖에 없다. 난 무가치한 인간이다. 살아있을 필요가 없다. 가진걸 소중히 여기지 못하는 인간이다. 그럼에도 내가 살아야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난 세상에 굶주린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우울증으로 괴로운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다. 허황된 꿈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