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100일만 살고 싶어

평범한 조울증 환자

by 새벽숲


기운이 없어 에너지가 없어 집중이 안 돼 사람 만나는 게 싫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난 그렇게 자주 중얼거렸다. 온몸에 모든 에너지가 다 빠져나간 느낌 영혼조차 없어진 거 같은 느낌 그러다가 주저앉아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날들이 곰곰이 생각해 보니 200일은 되는 거 같았다. 반대로 활기차게 상상을 펼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게 너무 즐겁고 이야기하고 듣고 공부하고, 하고 싶은 게 많아 잠을 줄이기도 하고 밥을 안 먹기도 하는 시기가 100일 정도 되는 거 같았다. 그냥 200일은 동굴에서 지내고 100일만 사회로 나오면, 나 그래도 사람처럼은 살아갈 거 같은데?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나서부터는 계속 중얼거렸다.


1년에 100일만 살고 싶어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어딘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100일이면 3달 정도만 살아있으면 된다. 한 달에 8일 정도만 살아있어도 되고 일주일에 이틀정도만 살아있어도 되고... 한 달에 일주일만 일하고 나머지는 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일주일에 이틀만 일을 하거나, 일 년에 3개월만 일을 하거나.. 언뜻 그렇게 생각이 떠다녔지만 그전에 찾아온 건 두려움이었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깊은 우울로 돌아가지 않겠다. 치료를 시작했다. 완벽한 삶을 위해서가 아닌 이해하기 위해서, 내가 왜 그런 상태가 되는 건지 알아야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래서 정신과에 전화를 하고 예약을 했다. 정신과에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예약은 일주일이나 기다려야 했다. 그럼에도 난 참고 기다렸다가 기어코 진료를 받았고, 약물치료를 하고 있다. 나아지는 듯 하다가 다시 우울하다가 그런 시간을 반복하고 있지만 나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을 제대로 갖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어쩌면 완치라는 것은 없이 이렇게 평생 살아야 할 수도 있을지언정 알지 못함으로 인한 불안정한 상태보다 마음이 훨씬 놓인다. 조울증진단을 받고 나니 모든 것들의 퍼즐이 맞춰지는 것처럼 나의 과거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1년에 100일만 살고 싶은 이유도 조증기간의 나를 좋아했기 때문이지도 모른다. 나에 대한 기록을 하면서 예전에 알았지만 모르는척 했던 마음을 들켰는데, 난 살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일하기 싫은 것 일지도 모른다 라는 진실이다. 죽고싶다라는 감정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라는 감정이 강하기 때문이다. 사회부적응자인가? 교환의 법칙에 따라 얻어야 할 것이 있으면 내어주어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 나는 그냥 받기만 바라는 파렴치한 일까... 살아있다의 정의가 무엇일까. 적은 것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면 난 그렇게 살아갈 용기가 있을까? 그럼 그냥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거 아닌가? 인간은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첫 진료 때 선생님께서 삶의 가치에 대해 물어보신 이유가 생각이 났다. 삶의 가치가 있어야 인간인 것이다.



우울기간의 꿈은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
조증기간의 꿈은 세상을 구하는 것.
보통의 나날에는
우울과 조증의 파편들을 수습하느라 꿈꿀 정신이 없다.



사무실 임대료는 밀려가고 각 부채들의 독촉전화가 걸려와 심장은 차가운 시멘트바닥에 내던져진 것처럼 소름 끼치게 굳어가고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때 핸드폰은 정지되고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는 지경까지 가다가 이젠.. 밥을 굶는 순간까지 왔다. 굶주리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이 시대에 정말 굶는 사람이 있다는 게 믿어질까?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못한 일들을 이곳에서 다 토해내고 있다. 솔직하게 창자까지 다 꺼내놓는 글을 기록하기로 했으니 할 수 있는 만큼 솔직하게 쓰려고 한다. 생활은 포기하고 싶은데 삶은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말이 되는 말인지 모르겠는 그런 순간이었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그렇게 난 피폐해져 갔다. 인간은 태어났으면 스스로를 돌봐야 하는 의무가 있는 걸까?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사회의 일원이 되고 사회의 시스템 안에 있으니 사회 구성원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해야 한다는 이차적인 것 말고 생물체로서 지구에 존재하려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것들은 개인이 짊어질 수 있는가? 난 사회이전시대에 살았으면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다. 한편으론 어떤 위협, 짐승들이나 외부환경, 기후의 위기가 있었다면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24시간이 바삐 돌아가느라 굶주릴 시간도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월세가 밀렸을지언정 제대로 된 거주공간이 없었을지언정 아직 전기는 단전되지 않았고 수도를 이용할 수 있고 바깥환경으로부터 보호되는 안온한 건물 안에 있었으므로 난 어쩌면 나태하게도 우울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우울증의 기간에는 삶의 포기가 찾아오고 조증의 기간에는 자기 파괴가 찾아온다. 충격적 이게도 조증을 자주 겪을수록 뇌는 망가진다고 한다. 나는 뇌가 망가지기 직전 적절한 때에 병원을 잘 찾아간 것인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채로 병원에 찾아간 것일까. 집중력은 떨어지고 말은 더듬고 단어들을 잃어버린 지 좀 되었다. 생각해 보니 조증의 기간으로 추정되는 시기에 스스로 머리를 때리는 적도 많았다. 집중을 하기 위해 스스로 자학을 했던 것이다. 한겨울 사무실에 쪽방을 만들어서 지냈다. 얼어붙은 사무실의 공기만큼 나의 마음도 점점 굳어갔다. 살고 싶지 않다.라는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인 것처럼 조용히 숨죽이고 있었다. 어떻게 그 시기를 견뎌내었는지 모르겠다. 살고 싶지 않다면서도 천막을 사서 몸을 녹이고 집기를 팔아 전기세를 마련했다. 할 수 있는 만큼 부채를 일으켰다. 이미 있던 부채에 더해져 부채는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망가져가는 스스로를 보살펴야 하는데 멀리에서 바라보며 방관하고 있었다. 잔인하다. 스스로를 파괴하면서 방관하는 나의 또 다른 내가 너무 잔인하고 무서웠다.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내가 잘못한 거니까 내가 실수한 거니까 내가 저질렀으니까 모두 내 잘못이니까 난 이렇게 어려운 시기를 겪는 것이 당연하다. 모두 감내해야만 한다. 굶어도 싸다. 처음엔 사업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끌고 갔지만 점점 사업을 계속하고 싶어서 정리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마무리할 힘이 없어서 그대로 끌고 가는 꼴이 되었다. 드문드문 연락을 주는 기관들이 있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온 힘을 억지로 끌어올려 주문을 해결하고는 방전되어 더 깊은 우울로 떨어져 갔다. 그러다가 어느 날 힘이 차오르길래 새벽 스터디 카페 청소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를 해준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일을 하나씩 늘려나가고 매장을 정리할 수 있는 힘을 가까스로 내었다. 그것이 또 문제가 되었지만... 갑자기 덜컥 사무실을 계약하고자 하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일주일이라는 시간 안에 4년의 짐을 모두 정리해야 했다. 갈 곳은 정해지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 시기 두 가지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상황에서 일주일 안에 사무실을 싹 정리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절대 시도하려고 하지 않는 일인데 조증의 나는(이런 행동이 조증이라는 걸 그땐 몰랐다. 그냥 해야 하면 하는 것, 하기로 했으면 하는 것, 하고 싶으면 하는 것, 목표가 있으면 이루는 것, 그냥 그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사무실 냉장고와 큰 화분과 판매되지 못할 짐들을 가까스로 구한 공간에 밤마다 날랐다. 눈 쌓인 길을 끌차를 덜덜거리며 날랐다. 포장이사비가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 용달비를 한 푼이라도 아끼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모두 마무리를 하고 한 달 후부터 몸에 이상이 찾아오고 마침내 나의 모든 에너지는 소진되어 버렸다. 1년 동안 겪었던 우울보다 더 깊은 우울로 들어가게 되었다.



친구의 사망, 엄마의 죽음, 이혼, 사업실패




첫 진료의 설문지에 썼던 문장이다. 난 이혼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결혼이야 말로 거대한 조증의 역작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엄마의 카톡 프사는 전남편이 엄마를 만났을 때 준 꽃다발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결혼을 해야 할 것만 같아서 정말 많은 남자를 만났다. 그중에 전남편이 있었다. 농담처럼 2년만 살다가 이혼해 준다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만남을 시작했는데 전남편은 아직도 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정말 난 전남편을 사랑했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우린 서로 달랐을 뿐 서로 사랑했었다는 것은 사실이라 생각한다. 전남편과는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헤어져 결국 엄마의 빈소를 지키는 건 나뿐이었다. 엄마의 빈소조차 찾아오지 않았던 전 남자친구를 다시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되다니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그야말로 결혼을 할 때가 찾아왔던 것이었을 것이다. 지금 전남편과 생활했던 지역을 떠나야 했지만 아직 머물고 있는 이유가 있을 것처럼. 이혼은 생각보다 너무 쉬웠고 처음엔 홀가분했다. 둘 중 누군가의 귀책사유로 시작된 이혼이 아니었기에 다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전남편의 “이혼하자” 가 사실은 자기를 사랑해 달라는 말인 줄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었다. 그러다 3번째 이혼하자는 말에 그러자고 대답했다. 문제는 모든 서류정리가 끝나고 나의 짐을 뺄 때 생긴다. 물증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물증을 파고들 생각도 더 이상 없었지만) 다른 여자가 있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왔다. 내가 지내던 공간의 느낌 냄새 그런 것들이 다른 생명체로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짐을 정리하며 펑펑 울었다. 갑자기 모든 것이 억울했다. 결혼도 이혼도 내가 선택했으면서 모든 것이 슬퍼졌다. 어쩌면 이혼은 계획된 것이고 나는 이혼이라는 연극에 나도 모르는 새 서있던 조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와서 무엇이 중요할까. 사랑했었고 가족이 되지 못한 한 남자가 나의 과거에 있었다. 라고 얘기할 수 있겠다.

선영이와 현준이 지영이는 중학교 때 알게 된 친구들이다. 그 셋은 소위 우등생들이었다. 나는 그림만 잘 그릴뿐 공부에는 흥미가 없었는데 그들은 모두를 두루두루 잘하는 아이들이었다. 그중 선영이는 미술에 소질이 있어 보였다. 미술수업에서 선영이가 그린 그림을 보고 감탄을 했고 서로 그림이야기를 하다가 친해졌다. 그렇게 그들 그룹에 들어가게 되었다. 현준이는 고등학교를 다른 데로 가게 되어 자연스럽게 지영이와 선영이만 교류를 하게 되었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지영이가 혈액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죽음을 애도할 시간은 얼마가 충분할까. 그때 그런 고민을 했던 거 같다. 반친구의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말에 이틀을 울었던 나는 지영이의 죽음에 한 달을 울었다. 그러다가 슬픔은 점차 옅어졌다. 선영이와 나는 솔메이트처럼 친구가 되었다. 그런 소중한 친구를 방치했다. 선영이 이후로 그래서 난 친구가 없다. 선영이가 습관처럼 죽고 싶다고 말할 때마다 난 듣는 척을 안 했다. 고등학교 때 죽음을 겪은 우리가 할 말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선영이의 비보를 들었을 때 결국 난 현실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도망쳤다. 믿고 싶지 않았다. 어딘가에 아직도 선영이가 살아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


내가 살아갈 수 있었던 힘은 알고보면 조증의 미친년이었을지도 모른다. 조증이 없었다면 난 이미 이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파렴치한 뻔뻔함 그러므로 속죄하는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지금의 나를 만든것은 아닐까. 이미 이세상에 없는 사람이었어도 상관없지만 이렇게 살아있으니 살아내야 겠다. 미친년에게 이제 네가 없어도 난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언젠가 이야기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만약에 모든 시도가 실패한다면 모든 치료가 실패한다면 난 그냥 1년에 100일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기어코 찾아 내고야 말겠다. 삶에 대한 의지가 차오르는 지금의 나는 이렇게 기록한다.


1년에 100일만 사는것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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