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빈을 찾아서

좋아하는 것은

by 새벽숲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방 한쪽에 헝겊에 쌓인 채 화석처럼 방치되어 있던 재봉틀을 갑자기 사용하고 싶어졌다. 먼지 쌓인 헝겊을 걷고 기름이 채워져 있는지 확인을 하고 실타래를 끼우고 코드를 꼽고 전원을 켜본다. 불이 들어온다. 다행이다. 전문가가 옮긴 것이 아니라 고장이 나도 어쩔 수 없었다. 그냥 되는 대로 급하게 옮겨 놓았었다. 옮긴 그 상태 그대로 그렇게 두었다. 마치 없는 존재인 것처럼 그렇게 방 한쪽을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 재봉틀이 갑자기 궁금해진 것이다. 윗실을 바늘에 잘 걸고 아랫실을 확인하는데 보빈이 없다. 보빈집과 함께 사라졌다. 머릿속을 뒤져본다. 과연 나는 보빈과 보빈집을 어느 박스에 넣어 놓았을까? 박스에 재봉틀 혹은 미싱 관련 짐이라는 이름은 없는데 소창(면직물) 박스, 큰 패브릭 박스, 작은 패브릭박스,,, 넣었놓았을 법 직한 박스들을 모두 열어 보아야 할거 같았다. 너무 귀찮았다. 보빈은 실을 감는 도구이다. 보빈이 없으면 재봉틀을 사용할 수 없다. 재봉틀은 윗실과 밑실이 얽히게 하는 도구이고 얽히게 하여 단단하게 천을 엮는다. 집기등을 팔아 전기세를 낼 때 재봉틀은 판매목록 2순위였다. 1순위는 컴퓨터였고 3순위는 스피커였다. 1순위와 3순위는 팔았다. 그런데 도저히 재봉틀은 팔 수가 없었다. 난 재봉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마도 사정이 좋아지면 내 상태가 좋아지면 난 조만간 재봉을 하게 될 것이고 그럼 판 가격에 절대 재봉틀을 살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재봉으로 다시 재기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 재봉으로 매출을 일으켰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어코 이고 지고 가져왔다. 보빈을 찾자. 너무 귀찮은 일이었지만 재봉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력해졌으므로 모든 관련 박스들을 열었다. 박스를 열다가 멈춘다. 패브릭 한 장 한 장에 기억이 떠오른다. 어느 시점에 왜 이 천을 들였는지 그 시기로 잠시 돌아간다. 밝은 창과 따스한 공기가 있는 공간에 천을 보며 즐거워하는 내 모습이 보인다. 다른 박스를 연다. 너무 힘들어서 쳐다도 보고 싶지 않았던 천들이 보인다. 천의 문제가 아니라 힘든 시기에 억지로 주문제작을 했을 때의 기억이다. 고통이 밀려온다. 박스를 열 때마다 기억들과 함께 불필요한 짐들도 나온다. 박스를 연김에 짐들을 정리한다. 아무리 찾아도 보빈이 보이지 않는다. 모든 박스를 파헤친 끝에서야 드디어 보빈을 찾았다. 쪽가위와 여분의 바늘들 그리고 보빈들이 들어있는 공구함을 찾았다. 돋보기를 끼고 재봉틀을 돌렸다. 예전에 패브릭 포스터제작을 하려고 직접디자인해서 주문제작했던 원단을 갖고 작은 가방을 하나 만들어 본다. 너무 재미있다. 뿌듯하다. 힘들지만 기분 좋다. 계속 재봉만 하면서 살아가고 싶기도 하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될 때까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재봉을 해야겠다 라고 생각한다. 실을 엮는 건 기분이 좋다. 실수하면 쪽가위로 풀고 다시 엮는다. 낱장의 천은 가방이 되기도 하고 행주가 되기도 하고 옷이 되기도 한다. 병원에 가게 된 것은 내 삶 속에서 가장 잘한 일중 하나이다. 삶을 다시 엮을 힘을 얻게 된다. 실수하면 쪽가위로 풀고 다시 엮으면 된다. 재봉틀을 팔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보빈을 찾으며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찾아야겠다. 좋아하지만 두려웠던 일들 잘할 자신이 없었던 일들 모든 잘할 것처럼 으스대던 때에 선택했던 것들 말고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들을 다시 찾아야겠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 건 그냥 평생의 난제이기 때문에 너무 당연하면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 혹은 평생을 노력해도 찾기가 어려웠던 일이기 때문에 포기하면서 계속 도전하면서 했던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더 무시했던 거 같다. 못 찾는 게 당연하지, 찾았다 해도 환경의 핑계를 대며 놓아주기도 하고, 이제 나는 치료를 하고 있으므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다시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기로 한다.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는 일은 다를까?



예전에는 커피와 음악만 있으면 살 수 있을 거 같았다. 여전히 내 곁에는 음악과 커피가 함께 있다. 평소 먹지 않았던 알약들을 먹고 있기 때문에 혹시나 몸에 무리가 갈까 봐 디카페인 커피로 바꿔마셨는데 선생님께 여쭈니 별로 차이가 없으니 그냥 좋아하는 것을 먹는 것이 좋을 거 같다고 하셨다. 지금도 음악을 듣고 있다. 한때는 좋아하는 음악 한 가지를 반복해서 계속 듣는 습관이 있어서 음들이 쪼개져서 들리는 경험을 한 적도 있다. 한 음이 나오고 다음 음이 예상되는 음악보다 예상되지 않는 음들이 나열되는 음악을 좋아한다. 대체로 재즈가 그런 느낌의 음악들이다. 아니다 반복되는 리듬의 중독적인 음악도 좋아한다. 그냥 대부분의 음악을 좋아하는 거 같다. 난 기록하는 걸 좋아한다. 어렸을 적부터 일기를 매일매일 썼었고 감정의 세세한 기록들을 남겼었다. 감정을 기록하면서 친구들을 이해하고 나를 이해하고 했던 거 같다. 글을 쓰면 감정들이 정돈되고 마음의 안정이 찾아온다. 커피와 음악 글쓰기.. 요즘은 요가하는 것이 좋다. 너무너무 힘들고 땀이 비 오듯이 하는데(다른 사람들은 평온하게 하지만) 한동작마다 너무너무 힘듦을 견디어내는 그 2분남짓의 시간에 스트레스가 풀리고 기분이 좋아짐을 계속 경험하고 있다. 사실 한때 운동중독이기도 했다. 데드리프트를 너무 좋아했는데 잘못된 자세로 해서 손가락이 망가진적도 있을 지경이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데 산책보다는 목표를 갖고 걷는 것을 좋아한다. 산을 오르는 걸 좋아한다기보다 정상이 있으니까 좋아하는 거 같다. 그런데 숲 속 한가운데 내가 놓여있는 것을 좋아한다. 모든 숲이 나를 감싸 안는 느낌이 너무 좋다. 이름에 숲이 들어가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처음 아빠가 이름을 지었을 때는 햇빛 비칠 효에 수풀림이었다. 햇빛비치는 숲이었던 나의 이름은 한자를 찾지 못한 직원 때문에 새벽숲이 되었다.) 여행을 좋아한다. 나를 낯선 곳에 놓고 보는 것을 좋아한다.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게 재미있다. 새로운 환경 풍경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모든 감각을 열어 흡수한다. 커피와 음악 글쓰기 요가 걷기 여행.. 식물 키우는 걸 좋아한다. 숲에 자주 못 가니까 그런 것도 같다. 나의 지출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게 식료품 다음으로 식물과 관련된 지출이다. 지금도 7가지 종을 키우고 있다. 커피 음악 글쓰기 요가 걷기 여행 식물... 갑자기 생각이 났다. 난 좋아하는 것이 너무 많아서 문제라는 것을.. 맙소사 왜 잊고 있었을까. 난 너무 많은 것들을 좋아한다. 반면 좋아하는 일이나 잘하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하나? 생각해 보니 몸은 힘들지언정 나는 어느새 만족하고 있다. 적당히 몸을 쓰고 적당히 도전정신을 활용하는 지금의 일이 맞는 거 같기도 하다. 하지만 오랜 시간 유지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1년에 100일만 살기 위해서는 원하는 것들을 교환하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한다. 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해낼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는 것인가? 사실 누구보다 잘하는 일이 있다. 그런데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기어코 보빈을 찾았듯이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먹고살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로 한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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