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을 거부하는 방법
언제까지 우울할까 언제쯤 우울이 사라질까 집착하지 않기로 결심했지만 잘 되지 않는다. 오전에 일어나 일을 하고 일하는 사이 빨래를 돌리고 운동을 다녀오고 식사를 하고 오후일을 나가기 전에,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청소를 한다. 그러다가 운동을 안 하는 날이나 청소를 안 하는 날이나 빨래를 안 하는 날 글을 쓰거나 책을 읽어야 하는데 그러고 싶지 않은 날 그런 날 난 바닥에 누워 중얼거렸다.
우울하다.
마음이 가라앉는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 되나 보다. 아무래도 아직 우울의 시기가 완전히 지나가진 않았나 보다. 무어라도 해야겠다. 일을 추가로 잡거나 무언갈 배우거나 강제로 나를 시간에 가두어야겠다. 그래서 내일 배움 카드를 만들었다. 뭐라도 배울까 싶어서, 배울만한 곳들을 알아본다. 난 무얼 배우고 싶을까. 관심 있는 분야가 있었는데 6개월 동안 9시부터 6시까지 학습하는 힘든 코스만 있었다. 생각해 보니 그럴법했다. 그건 지금 경제 활동을 해야 하는 나에게 사치였다. 그래서 포기했다. 혹시나 오전시간대에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지금 하고 있는 재택근무를 빠르게 새벽에 마무리하고 배울 시간이 있을 거 같은데..... 운동은 주말에 하는 걸로 바꾸고... 그렇게 희망을 갖고 다시 알아보기 시작했다. 있었다. 수강상담을 하고 등록하는데 까지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 이제 빈시간이 없다. 물론 책을 읽을 시간도 따로 공부할 시간도 없을 예정이다. 책을 읽는 시간과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이라고 시간표에 적어 놓은 시간에 그 일들을 하지 않고 우울해하고 있는 꼬락서니를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수업은 1기가 마감이 이미 된 상태여서 3주간 기다려야 했다. 그 3주가 바로 지난주였다. 오늘 개강이다. 막상 다가오니 걱정이었다. 나에게 수업을 들을 에너지가 있을까? 또 무리하는 것은 아닌가? 의사 선생님은 무언갈 배우려는 시도는 매우 칭찬한다고 응원하셨지만 나는 처음 등록할 때와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그냥 이대로 이 시간을 이렇게 좀 더 보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나는 또 무리하려고 했을까... 영타연습도 해야 하고 과제도 있을 테고.... 수업을 이해 못 하면 어떡하지... 우선 시작하면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은데 포기하게 되면 어떡하지.. 지금 내가 짠 다른 스케줄에 무리가 가면 어떡하지? 고민이 된다. 이렇게 새로운 무언갈 시작하는데 주저했던 적이 없었던 거 같다. 나는 왜 이렇게 심장이 쪼그라들었을까? 약 때문일까? 또 우울의 롤러코스터 하강지점에 들어갈까 봐 두려운 것일까. 지금 이 상태에 감사하고 만족해야 하는데 일을 또 벌린다는 죄책감 때문일까... 지난주부터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학원에 나가면 또 다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요즘은 크게 웃거나 크게 울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다양한 활동을 적절히 하는 것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분명 우울증상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니 그냥 가야겠다. 겁먹지 말자. 시간 속에 나를 가둬 시간이 흐르면 나도 흘러가있는 상황을 만들자. 째깍째깍 시간의 흐름을 느낄 시간이 없이 그렇게 시간 속으로 들어가자.
시간이 흐른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의 생각 속으로 들어갔던 적이 있다. 음악과 커피에 빠져 다른 어떤 것도 하지 않던 시기 어쩌면 지구에 태초에 흐르던 건 물이 아니라 소리가 아니었을까. 소리는 바람이다. 소리는 시간이다. 난 소리가 좋다. 공기의 움직임을 소리로 바꾸는 음악이 좋다. 공간에 음악이 흐르지 않으면 불안한 지경까지 이른 적도 있다. 음악이 흐르지 않는 공간은 공기가 답답하게 느껴진다. 폐가 살려달라고 요동친다. 숲 속 한가운데에 있으면 소리가 꽉 찬 느낌이다. 그래서 숲을 좋아하는 것도 같다. 어쩌면 나는 선천적으로 폐가 약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하다. 공기가 탁하면 싫다. 아무래도 숲 속에 들어가서 살아야 하나 보다. 모든 부채를 청산하면 숲 속에 작은 집을 짓고 마음껏 시간을 들으며 살아가고 싶기도 하다. 첫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버스를 한번 갈아타야 하는데 내릴 곳에서 내리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처음 보는 동네 처음 보는 시장 안으로 들어간다. 갑자기 시장 떡볶이가 먹고 싶어 졌다. 수업은 점심시간도 없이 진행한 터라 배가 고팠다. 국물 떡볶이와 김말이 튀김을 먹고 다시 돌아온다. 알 수 없는 길에 놓이는 것 여행에서 겪는 일을 일상에서 겪으니 생소하고 재미있었다. 목적 없이 목적 없는 곳을 서성이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종종 길을 잃고, 내려야 할 곳에서 내리지 말아야겠다. 일하기 싫다. 그런데 월급이 들어왔다. 일하기 싫지 않다. 부채들을 갚고 남은 돈으로 떡볶이를 사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정말 행복한 인생이 아닌가? 이번 진료에선 지난번에 잊고 말씀드리지 않았던 유서를 작성하며 깊은 슬픔에 빠졌던 이야기와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언젠가
시간에 가두지 않고도 우울하지 않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