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감시원 10

by 소인

밥 농사

용담마을에 분뇨처리장이 생기면서 범들 마을로 이주한 박 씨가 기계 모판에 볍씨를 넣는다. 모판에 상토를 깔고 소독한 볍씨를 틀에 부어 일정한 간격으로 채운다. 벽돌공장 블록 찍는 과정과 흡사한데, 모판의 볍씨 넣기는 밥을 짓는 농사다. 하우스에서 싹을 틔워 잘 고른 논바닥에 물을 자박하게 가둬 육묘 과정을 거치면 초파일 무렵 탈탈 이앙기에 실려 일제히 논바닥에 꽂는다. 물에 잠겨 익사할 듯 끄트머리 내밀고 몸살 견디면 화풍 부는 오뉴월 땡볕 쬐며 검푸른 벼 포기로 성장한다. 예전엔 볍씨가 고슬고슬한 고봉밥이 되기까지 여든여덟 번 농부의 손길 거쳐야 했지만 요즘은 한두 사람이 기계로 뚝딱 해치운다. 농우 소 거친 콧김 뿜으며 써레질로 논 삶던 일도, 드렁허리 논두렁 구멍 내던 저지레도, 늦가을 논 뒤집어 미꾸라지 잡아내던 추억도 사라졌다. 논두렁 콩 심어 대우 파던 일도 풀베기도 제초제로, 피사리 김매기도 농약으로 단번에 해결한다. 모 찌고 모춤을 날라 논에 던지고 모쟁이 구령에 맞춰 허리 구부렸다 폈다 모를 심던 풍경은 전설이 되었다. 들판에 막걸리 사발 권커니 잣 커니 메나리 한 바탕 불어 젖히던 논틀 밭틀 구성지고 고달픈 노랫가락도 옛말이 되었다. 읍내 북경반점 짜장면 새참에 가고파 다방 미쓰김 배시시 허리 꼬며 타주는 꿀 커피가 대세다. 끄느름한 하늘 볍씨 넣던 박 씨 산불 보다가 오후에 새참 먹으러 오란다.



중대장 김 씨

예비군 중대장 출신 김 씨 밭 쫀다. 한 삽 찍어 뒤집을 때마다 묵은 흙밥에 햇살 섞이고 거름 먹은 흙의 속살 헤시시 부서진다. 작년 늦가을 심은 마늘 싹 반가웃 올라왔나. 구메농사 입에 들어가는 밥상 간이 심심한데 경기도 팔 층짜리 건물 샀다는 고향사람 절골에다 삐까번쩍 양계장 지어 새로 병아리 들인단다. 재산이 백억이 면 손 안 대고 밑 닦는 팔자 만고 땡인데 뭐하는 지랄인지 돈 더 벌자고 고향 동네 닭똥냄새 풍기는지 내 팔자 돌아보니 속에 천불 난단다. 얼마 전부터 먹은 마음 잘 때나 깰 때나 앉으나 서나 생각이란 생각 죄다 버리기로 익명의 존재로 사니 맘 편한데 내가 도무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나는 대체 누군지 도통 알 수 없더란 예비군 중대장 김 씨 점심때 되었나 자꾸 시계 들여다본다.



조실고개

아이구 말도 마시더. 난리 통 읍내 나가는 조실고개 가마니로 덮은 건 다 송장이었니더. 덜 식은 몸뚱이 핏물 벌컥벌컥 솟았니더. 구덩이마다 처박힌 송장 파리 구더기 들끓어 코 쥐고 다녔니더. 끌려간 서방 입으라고 고이 지은 삼베적삼 탐난 인민군 장교한테 옷 바꿔 입고 풀려났는데 사흘돌이 찾아와 짐꾼 공출 성화에 애먼 발등 찍어 목숨 면했니더. 지금에사 바뀐 세상 총소리 사라지니 돼지새끼 꿀꿀대는 냄새 땜에 몬사니더. 돈에 환장한 양돈업자 목에 칼 들어와도 돼지 끌어안고 산다니 무슨 수로 쫓니껴. 농사짓는 이 저승 가도 농사짓고 도둑질한 놈 저승 가 살아도 도둑질한다는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목숨 왜 안 데려가는지 몰시더. 암만 생각해도 염라대왕님 총기 어두워졌는지 몰시더. 구십 넘어 기억 말짱한 솔안골 할매 툇마루 이바구 침 튀는데 건너편 산기슭 왕벛나무 환한 꽃잎 헤죽헤죽 벌어진다.

원구 씨 네 백구가 또 새끼를 낳았다. 백구는 방송 틀지 않아도 산불 차를 귀신 같이 알아낸다. 마을회관 앞에 차 세우자 건빵 먹으려고 다가오는 백구. 뒤에 발탄강아지 삼총사 맹렬히 달려오고. 나머지 두 놈은 세상 밖이 무서워 큰길에 나서지 못한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강아지들의 환대라니. 고맙고 눈물겹다. 순수한 환대는 모든 경계를 지운다. 경계 없음은 고통도 열락도 기꺼이 나누는 관계 맺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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