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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1

by 소인

울릉도①

작취미성(昨醉未醒)의 핏발 선 눈으로 새벽길을 더듬어 동쪽으로 달렸다.
네비를 켜니 후포항은 영양 수비를 거쳐 가라고 일러준다.

봉화에서 영양 가는 길은 뾰족한 산으로 묻혀 있다. 첫새벽에 호미 들고 가는 여인, 비알밭에 약 치는 늙은 농부 내외, 신록이 풍기는 냄새가 새뜻하게 느껴진다. 일월산 장군봉 아래 아연광산에 다닌 적이 있다. 지금은 폐광되었지만 일제 때부터 아연광석을 캐냈다. 땅 밑은 숭숭 뚫린 갱도로 스펀지 같을 거다. 벌건 녹물이 흐르는 케이지를 타고 십일 편 지하 육백 미터 막장에 내려가 잠수펌프를 박고 굴하 작업을 했다. 쥐눈이콩 만한 아연 원석이 떨어져도 헬멧에서 우지끈! 천둥 치는 소리가 났다. 아침 방울이(점호) 시간에는 봉지커피로 긴장을 달랬다. 서울에서도 마시지 않던 커피였는데 광산 시절의 커피가 지금은 달고 살 정도로 습관이 되었다. 교대시간 굴 밖으로 나오면 폐석 더미 위에 핀 쑥부쟁이가 가을바람에 가느단 목을 흔들며 반겨주었다.

백암온천, 울진을 따라 내려가며 동해안 산자락을 들쑤시며 산림작업을 했다. 간벌과 수간주사 작업을 했다. 기계톱을 메고 산등을 넘던 거칠고 가슴 뛰던 푸른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먹고 사느라 고단한 하루를 숲에서 보내던 시절이었다. 광고회사를 작파하고 젊은 아내와 어린 남매를 데리고 도망치듯 서울을 떠나 첩첩 산골에서 밥을 벌기란 고달프고 척박한 노동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죽을 만큼 벌어야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울릉(鬱陵)이라는 명칭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김부식의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보면 신라 지증왕 13(513)년에 신라 하슬라州 군주인 이사부(異斯夫)가 우산국을 정복했다는 기록이 있다.

숙종대의 안용복(1658~?)은 1차(1693년. 숙종 19)와 2차(1696년) 일본에 건너가 막부 정권에게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주장해 그들로부터 인정받았다. 그러나 당시 조선 정권은 그에게 상은 고사하고 월경죄와 관리 참칭죄를 물어 곤장을 치고 유배를 보냈다.

안용복보다 조금 늦은 시기를 살았던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은 그를 이렇게 평가했다.

안용복은 영웅호걸이다. 미천한 군졸로서 죽음을 무릅쓰고 나라를 위해 강적과 겨뤄 간사한 마음을 꺾어버리고 여러 대를 끌어온 분쟁을 그치게 했으며 한 고을의 토지를 회복했으니, 영특한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포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앞서는 형벌을 내리고 나중에는 귀양을 보냈으니 참으로 애통한 일이다.

울릉도는 척박하다. 그러나 대마도는 한 조각의 농토도 없고 왜인의 소굴이 되어 역대로 우환이 되어왔는데, 울릉도를 한번 빼앗기면 이것은 대마도가 하나 더 생겨나는 것이니 앞으로의 앙화(殃禍- 재난)를 이루 말하겠는가.

그러니 안용복은 한 세대의 공적을 세운 것만이 아니었다. …… 그런 사람을 나라의 위기 때 병졸에서 발탁해 장수로 등용해 그 뜻을 펴게 했다면, 그 성취가 어찌 여기서 그쳤겠는가.- [성호사설] 제3권 <천지문(天地門)> 울릉도


구주령을 넘어 뱀처럼 구불텅한 길을 한참 내려가니 비로소 평야가 나타났다. 온천물로 내장을 씻은 차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내달린다. 길가에 도열하듯 늘어선 배롱나무 두툼한 이파리가 반짝이며 물결을 이룬다. 주변의 지명이 온통 지난 기억들로 범벅이 된 느낌이다.

후포항 여객터미널에 도착하니 대합실이 휑뎅하다. 주차장은 버스와 승용차로 빼곡하다. 매표소 직원도 보이지 않는다. 혼자 심심해 보이는 매점 남자에게 다가가 물으니 수시로 바뀌는 운항 일정에 오늘 배는 여덟 시에 떠났단다. 糟糕! 아뿔싸! 머릿속이 엉클어진 실타래로 배배 꼬였다. 매점 사내에게 몇 가지 정보를 얻어 매표소 벨을 눌렀다. 여직원이 나온다. 친절하게도 30% 할인되는 인터넷 예매를 해주었다. 요즘 울릉도 관광이 성수기라 주말엔 배편을 기대하기 어렵단다. 내일 아침 금요일에 출발해서 일요일 오전에 돌아오는 배편을 예약했다. 처음으로 가보는 울릉도 여행. 오세영 시인은 독도를 '내 사랑하는 막내 아우'라고 했다. 형뻘 되는 울릉도로 간다. 배가 고팠다. 죄다 대게집과 횟집 투성이인 골목을 더듬으니 순댓국 간판이 보인다. 반가웠다. 그녀 생각이 났다. 순대국밥집에서 다뉴브강 유람선 침몰 소식을 들었다. 저런!... 정신이 아뜩해졌다.

내일 아침까지 남은 시간을 어찌 보낼까.
실은 울릉도 일주도로 45km를 돌 때 배낭의 무게가 걸린다. 60L의 대형 배낭을 메고 고갯길과 터널을 넘을 생각하니 아찔하다. 배낭엔 텐트, 침낭, 취사도구로 묵직하다. 내륙이라면 차를 베이스캠프 삼아 움직일 텐데 섬까지 차를 실어가는 건 언감이다. 한적한 길에 차를 세우고 자전거를 꺼냈다. 땡볕 쏟아지는 농로를 십여 분 달렸다. 짧은 주행이라 가뿐한 느낌이지만 어쩌랴. 이왕 나선 여행을 강행하기로 한다. 이박 삼일의 기간 동안 매식하기로 한다. 부식까지 넣는다면 라이딩이 고달프리라. 현장에서 조달되면 라면 정도는 끓여 먹기로 한다. 성인봉과 내륙의 나리분지 등은 다음으로 미룬다. 어쩌면 다시 오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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