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산불감시원 2

by 소인


일요일 아침 인가 없는 골짜기에서 꾸역꾸역 연기가 오른다. 선돌 마을로 가려다 차 돌려 올라가니 머리 허연 사내가 젖은 쓰레기를 태운다. 공무도하가에 나오는 백수 광인(白首狂人)의 모습이다. 멀리서도 허옇게 뿜어대는 연기를 피해 눈을 찡그리며 불을 뒤적이는 게 보인다. 가을 걷어간 빈 밭이 너두룩하게 널린 골짜기 하우스에 겨울 나는 벌통이 층층이 쌓였다. 벌들은 설탕물 먹으며 이곳에서 겨울을 보내고 만화방창(萬化方暢)한 봄날 절기 맞춰 팡팡 터지는 꽃을 찾아 날아갈 거다. 쓰레기를 태우는 바로 옆은 잔산(殘山)과 맞닿은 임연부(林緣部)라 마른 잡목과 떨어져 쌓인 낙엽더미로 발화엔 최적이다. 이른바 산불 취약지구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가까이 가니 사내는 긴장한 듯 움직임을 멈추고 바라본다.

산불 조심에 대한 주의사항을 말하고 가려는데 무척 송구한 표정의 사내가 뜬금없이 '북한에서 왔어요' 한다. 그 말 속엔 남한의 사정 어두우니 좀 봐달라는 애원도 섞였다. 내 눈이 커졌다.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다. 원산. 하얀 모래가 비단처럼 깔렸다는 명사십리 해수욕장. 아이들 어려서 집 떠난 지 삼십 년이 되어간단다. 러시아 벌목공 계약기간 이 년이면 자본주의 물든다고 계약 연장을 불허했다. 계약이 끝나자마자 탈출해 시베리아를 떠돌며 살았다. 타국의 노동자로 숨어 사는 동안 떠나올 때 갈래 머리 어린 딸은 엄마가 되어 손주를 낳았고 장성한 두 아들과 아내가 입성을 차려입고 찍은 가족사진을 조심스레 폰을 열어 보여준다. 목숨을 걸고 남조선으로 건너가는 탈북민의 소식을 듣고 한국 대사관에 도움을 청해 2011년에 들어왔단다.

그의 말을 듣는 동안 말에 섞인 어휘로 미루어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거나 책을 많이 읽은 듯했다. 그는 다변은 아니었지만 말을 빨리 하는 편이었는데 상황 설명에 대한 요약과 정확한 언어 구사가 흥미롭게 느껴졌다. 대화는 내가 주로 묻고 그는 대답하는 쪽이었는데 마치 심문하는 모양새였지만 처음의 긴장은 많이 풀어졌다. 담배를 꺼내며 담배를 피우냐고 물었다. 피운다면서 그는 윗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필터가 두꺼웠다. 둥글 갸름한 그의 얼굴에 비해 담배 문 입술은 두툼했다. 키는 중키인데 그동안의 신산한 삶이 느껴졌다. 나도 산판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하니 그의 입이 벌어지며 웃는다.

나이를 물었다.
올해 환갑이란다. 고생을 겪은 탓인지 나보다 훨씬 늙어 보인다. 학교는 어디까지 공부했는지 물었다. 북한의 학제는 초등 5년, 중학 5년, 전문학교 2년과 그 이상은 대학교라는데 자신은 중학교까지 마쳤단다. 여기 양봉장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일을 배우러 왔다는 거다. 실은 한국에 들어와 집으로 돈을 부치고 남은 여축을 모아 목돈을 만들어 같은 탈북민인 양봉업자에게 투자했는데 모두 날렸다는 거다. 병과 천적, 이상기후로 채밀(採蜜)이 어려웠던 데다 동업자는 도박을 했단다. 나이 들어 받아주는 공장이 없어 어려운 터에 양봉협회서 만난 지금의 사장에게 양봉일을 배우는 거란다. 사장은 오늘 볼일로 나가 오지 않는다고 했다. 북한의 집으로 송금할 때 중개인에게 송금액의 반을 주어야 한다. 직접 전해주기 때문에 통과하는 도중에 뇌물이 많이 들기 때문이란다. 송금 확인은 중국으로 연결되는 인터넷 통신망으로 된단다. 가장의 송금을 애타게 기다렸을 그의 가족이 떠올랐다.

불에 탄 쓰레기에서 가는 철사가 나왔다. 사내는 녹슨 갈퀴로 철사를 들어내며 불속을 뒤집었다. 상반송 마을로 통하는 산길을 지나는 차는 뜸하다. 얼마 전 소규모의 도로공사가 끝나고 남은 철근 몇 가닥이 길가에 버려진 채다. 흐린 하늘에 말똥가리가 날개를 펴고 맴을 돌며 들쥐를 노린다. 가을갈이 끝낸 포실한 밭흙을 헤치던 까마귀 두엇이 땅바닥에 코를 박는다. 일기예보론 오늘 비 소식이다. 하늘은 잿빛으로 내려앉았다. 사내가 들고 있는 갈퀴만큼 거칠다. 가족을 위해 시베리아 자작나무 숲과 남한의 도시 그늘과 산하를 헤맸을 고단한 그의 삶이 매운 연기처럼 흐릿하게 비친다. 젖은 종이포대는 불꽃을 날름 대다 사위고 연기를 토하며 마르고 타고를 반복했다.

학교서 항일유격대 시절 김일성의 보천보 전투를 배웠냐고 물었더니 그걸 아느냐고 놀란다. 팔로군과 한국전쟁을 지휘했던 무정 장군을 아느냐고 했더니 모른단다. 김일성의 연안파 숙청 등으로 밀려난 인물의 뒷얘기는 가르치지 않는 게 당연했다. 남쪽이나 북쪽이나 체제 선전에 해가 되는 인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마는 거였으니. 평북 정주가 고향인 시인 백석(白石)은 협동농장을 전전하다 1996년도에 사망했다. 북녘 지방의 사투리로 향토색 짙은 서정을 노래했던 그의 말년은 겨울 달밤을 컹컹 찢던 승냥이 울음만큼이나 쓸쓸했을 거다.

성분은 좋은 집안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고향은 충남 태안이고 어머니 고향은 이북이었는데 서울대에서 공부하다 두 분이 만났다고 했다. 해방 전 1942년에 이북의 처가에 데릴사위로 장가든 아버지는 좌익이었고 그곳에 정착하여 교장으로 퇴직했다. 남파 간첩이 성행하던 시절 아버지의 제자 중엔 간첩도 수두룩했단다. 사내는 팔 남매 중 다섯째인데 형과 누이는 이미 세상을 떴고 자신과 동생들만 남았다고 했다. 형제 얘기를 하며 시선을 잡목 무성한 산 쪽으로 돌린 그의 눈이 가늘어진다. 그는 까매진 손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그는 뉴스를 열심히 보는지 북미대화의 진전과 국내 정치상황에 대해서도 의견을 털어놨다. 당장 체제 통합의 한 정부로서의 통일보다 여러 세대를 거치더라도 경제 교류와 인적 왕래 등의, 그래서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방제 통일안에 대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나의 장단과 부추김이 들어맞기도 했지만 자신의 얘기를 꺼내고 들어주다 보니 둘의 관계는 눅눅한 날씨의 불기운처럼 녹았다.

불이 다 사그라들 때까지 자리를 지켜달란 당부를 하고 현장을 떠났다. 그의 앞날이 꿀맛 같길 바란다고 했다. 오후에 다시 들를 생각이었지만 점심 답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로 오후 일은 접게 되었다. 시내에 얻었다는 셋방으로 그는 무사히 돌아갔을까. 통일은 멀고 죽기 전 가족을 과연 만날 수는 있을까. 개인의 의지와는 하등의 상관없이 이념과 체제로 갈라진 인간의 상황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탈리아의 화학자이며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프리모 레비는 전후 역사를 바로 쳐다보지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인간 존재를 부정하는 세계에 대한 분노로 '이것이 인간인가'를 썼다고 했다. 눈앞의 욕심만을 앞세우는 오늘의 정치 현실을 보면 숨이 턱턱 막히도록 질릴 뿐이다. 개인은 세계이자 삶의 주체다. 삶을 가로막는 거대한 벽은 어떻게 부술 것인가.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우연한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