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에서 만드는
태국식 핫소스

시라차 소스와 태국 오믈렛

by TwoHearted


태국의 핫소스, 시라차 Sriracha는
베트남 아저씨가 캘리포니아에서 만든다.

아마존 비디오 채널을 뒤적이던 그가 시라차 소스에 관한 짧은 다큐멘터리가 있다고 같이 보자고 했다. 다큐는 미국 전역에서 불고 있는 시라차 소스 열풍에 대한 다양한 팬들의 짧은 인터뷰들로 시작되었다. 어떤 사람은 그 큰 소스통을 가방에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무엇을 먹든 그 위에 뿌려 먹는다고 했다.


"I love Sriracha!" 티셔츠를 입은 그들은 미국의 오래된 농담 "베이컨은 어디에 얹어 먹어도 맛있어 Everything is better with bacon"처럼, "Everything is better with Sriracha"라고 온몸으로 외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다큐는 빨간색 소스가 비쳐 보이는 투명한 플라스틱 병에 하얀색으로 그려진 닭 로고가 도드라져 보이고 조그마한 초록색 뚜껑이 대비를 이루는 시라차 소스의 공장을 찾아갔다. 그 공장은 캘리포니아에 있다고 했다.


응? 베트남 식당에 갈 때마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쌀국수 먹을 때 찍어 먹었던, 그 빨간 소스를 베트남에서 수입해 오는 것이 아니라 캘리포니아에서 만든다고?


응? 베트남이 아니라 태국이 원조라고?


으응?


언젠가 집에서 반미 Banh Mi 샌드위치를 만든다고 소스를 샀던 것이 떠올라 냉장고로 달려갔다. 과연, 빨간 티셔츠를 입고 "저는 항상 가지고 다녀요" 말했던 다큐 속의 여인의 가방에서 나온 것과 똑같은 소스병이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정말로 소스병 생산지 란에 캘리포니아 주소가 적혀 있었다. Irwindale, CA.


베트남에서 미국으로 넘어와 제대로 맛을 내는 소스가 없음이 아쉬워서 직접 만들어 팔다 보니 큰 공장을 짓게 되었다는 사장님은, 너무나 검소하고 겸손한 성품이 한눈에 보이는 인상 좋은 할아버지였다. 그의 수줍은 미소가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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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들이 사는 곳, 태국

요리 방송 심사위원으로 자주 티브이에 출연하는 태국 출신 요리사가 태국 시라차 Si Racha 지역에서 만들기 시작하여 이제는 태국의 국민 소스로 자리하고 있는 시라차 소스가 태국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얘기해주었다.


아아. 태국.


그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태국, 그리움이 훅. 밀려왔다. 미국으로 이사를 오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 중의 하나가 "태국에서 멀어지는 것"이었던 만큼, 나는 태국이 주는 휴식이 좋았다. 한국에서 비행기로 5시간이면 태국에 갈 수 있는데, 미국 집에서 비행기로 5시간을 날아가면 여전히 미국이라는 것이 어쩐지 비현실적이었다, 미국의 웬만한 주 하나보다도 훨씬 작은 한국에서 평생을 살아온 나에게는. 방콕 공항에 도착하고 비행기에서 내리면 온 몸으로 달려드는 태국의 냄새, 후끈한 공기, 태국어 안내 방송의 간질간질함까지, 5시간 만에 새로운 세계에 도착한 설렘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 곳에서 5시간을 날아가 캘리포니아의 공항에 내리면 똑같은 냄새, 똑같은 프랜차이즈 식당, 똑같은 사람들, 똑같은 언어, 뭐랄까 조금 시시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태국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하루면 충분했다. 태국을 알기 전에는,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동남아보다는 유럽으로 날아갔었다. 그래서 동남아 휴양지에 대한 경험은 필리핀 보라카이가 전부였다. 거짓말처럼 아름다웠던 보라카이 해변을 일주일 동안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좋아서, 매년 다시 오자 약속도 했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그곳에서 살아가고 일하는 필리핀 사람들의 지치고 무기력한 표정과 눈빛을 마주하는 것이 불편해서, 실제로 다시 가게 되지는 않았다. 그들을 대하는 한국 사람들의 갑질 혹은 무례함이 이미 익숙해 보였던 사람들의 눈빛을 또 마주하는 것은 망설여졌다. 그 한 번의 경험으로 필리핀을, 동남아를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그래, 태국에 한 번 가보자." 마음먹기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렸고, 그렇게 방콕에 도착한 첫날, 사랑에 빠졌다.


태국 사람들은, 하루하루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행복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태국 사람들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가 아름다웠다. "어떻게 행복이 표정으로 드러날 수 있지?" 신기했다. 그 오랜 나의 편견이 무색해질 만큼, 태국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곳이었다. 나중에 치앙마이 대학 교수님에게 "태국 사람들은 행복을 추구하며 살기 때문에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너무 많은 생각이 머리와 마음을 압도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나는, "남과의 비교"가 주는 긍정적 에너지보다 부정적 영향이 더 커진다 싶은 자각이 생길 때면 태국을 생각하면서 반성하곤 했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번 혹은 두 번씩 꼬박꼬박, 에너지 충전을 하듯, 태국으로 날아가 행복하게 사는 그들 곁에서 나도 삶의 행복을 야금야금 수집해서 돌아오곤 했다. 방콕의 수많은 재즈바와 식당들에도, 치앙마이의 푸르른 골목길에도, 빠이의 들판에도, 후아힌의 야시장에도, 코창의 론리 비치에도, 라차 섬의 스노클링 포인트에도, 나는 행복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시라차 소스 듬뿍 뿌려서
태국식 오믈렛, 카이 찌아오 Khai Jiao

태국이 그리운 날, 지구 반대편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아쉬운 대로 태국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 사업의 성공과 대중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그저 겸손하고 수줍게 웃으시는 시라차 소스 사장님의 미소에 우리도 덩달아 미소 지으면서, 다큐가 끝나자마자 태국식 오믈렛을 만들자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필요한 건 오직 계란, 피시 소스 또는 간장, 넉넉한 기름.



기름을 넉넉히 두른 팬을 달군다.

계란 4개에 피시 소스 혹은 간장을 2스푼 정도 넣고 잘 풀어준다.

뜨거워진 기름에 살포시 계란을 부어주면, 보글보글 순식간에 부풀어 오른다.

아랫면이 갈색 빛을 띠면 조심스레 뒤집어서 반대쪽도 익혀준다.

접시에 재스민 라이스를 담고, 그 위에 계란을 얹는다.

왠지 더 맛있을 것 같은 기대감으로, 냉장고에서 발견한 고추와 파도 송송 썰어서 얹는다.

시라차 소스 듬뿍 뿌려서 태국의 맛을 음미한다.

캬.




내 마음의 고향, 태국
오늘도 고운 미소로 행복하기를

얼마 전 학위를 마치고 고향 방콕으로 돌아간 친구와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태국과 태국 음식을 사랑하는 나에게, 태국에서부터 가져온 온갖 양념류를 서슴없이 나누어 준 그 친구 역시, 언제나 환한 미소로 사람들에게 좋은 기운을 전하는 사람이었다.


태국은 6월 말까지 통행 제한이라고 했는데, 더 연장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도시는 조용하고 다들 조심하고 있다고 했다. 늘 활기차고 북적이는 방콕만 보아왔던 나로서는 조용한 그곳을 상상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길거리의 태국 사람들이 떠올랐다. 내가 보아왔던, 보는 것만으로 항상 감사했던 고운 미소를 여전히 지키고 있을까. 그 누구도 예상하지도 경험해보지도 못한 지금의 코로나가 그들의 미소를 앗아가지는 않았을까.


내가 기운을 잃고 지칠 때마다, 그저 그곳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힘을 얻었던 태국, 그곳에서 하루하루를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여전히 건강하기를, 안녕하기를, 여전히 고운 미소로 잘 극복하고 있기를 바라며,


매콤한 시라차 소스 듬뿍 뿌려서 태국식 오믈렛 Khai Jiao 한 접시를 순식간에 해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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