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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소이 Mar 31. 2024

나에겐 무거운 아름다움, 프라하에서(1)

- 그러나 아름다운

 "더 아름다운 시계를 만들 수 없도록, 그들은 시계공의 눈을 멀게 했습니다. 눈먼 시계공이 만든 천문시계는 프라하에 있습니다."    

 

 시계공이 더 아름다운 시계를 만들 수 없도록 프라하 시민들이 그의 눈을 멀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순간부터, 시계공의 눈과 맞바꾼 그 아름다운 천문시계를 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차올랐다.      


 내 안에 프라하의 천문시계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 부풀어서 막 터질 듯 아슬아슬할 때였다. D와 난 퇴근하고 집에 오면 누가 더 바빴는지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마구 늘어놓았다.      


 이제는 시간이 없어서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씁쓸했다. 더 늦기 전에 가야겠다. D와 난, 비행기 표를 끊고 숙소를 예약하고 한국을 떠났다.    

 

 숙소에 짐을 풀고 예약한 야경투어를 하기 위해 서둘러 약속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유람선에 올라타자마자 코젤다크 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달콤하고 진득한 액체가 무겁게 혀를 짓누르며 입안에서 부드럽게 감겼다. 달콤한 맥주를 가득 머금고 목 뒤로 넘기며, 블타바 강 표면에 영롱하게 부서지는 불빛들을 바라봤다. 피로와 근심이 강물을 따라 흘러갔다.      


 투어의 마지막 목적지는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천문시계가 있는 광장이었다. 영롱하게 빛나는 천문시계를 바라보며 D에게 속삭였고, D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름답다."     


 실체를 직접 마주한 순간, 내 머릿속에서만 그리던 모습보다 더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오거나, 생각보다 덤덤해서 당황하고 실망한다. 내 경우는 전자였다. 어둑한 거리에서 가로등 불빛에 반사돼서 반짝이는 천문시계의 자태는 ‘아름답다’라는 말 한마디 만으로는 모자라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제프 다이어가 저술한 재즈 음악가에 관한 이야기 ‘그러나 아름다운’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그의 말이 멎었을 때 그녀는 전보다도 더 음악에 집중하고 있었다. 마치 연인의 부모 사진을 들여다보며 흐릿하게 닮은 흔적을 찾으려는 사람처럼.   
 - 그렇게 아프고 고통스러운데도,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렇지만….
한참을 침묵하고 있던 그녀가 말했다.  
 - 그렇지만…. 아름다워 키스로 눈물을 닦아줄 때처럼.

- 그러나 아름다운, 제프 다이어, 2013, 사흘, p.264     


 그의 책에 등장한 레스터 영, 몽크, 버드 파웰. 인종차별과 삶의 고통을 재즈라는 자유로움으로 풀어내고자 했던 예술가들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그러나 아름다운(but beautiful)이라는 책 제목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음악을 들었다. 난 그들의 고통이 만들어낸 음악이 주는 아름다움에 심취했다.      


 프라하의 시간, 난 시계공의 눈을 앗아간 아름다움에 감동하고 있었다. 아름다움을 소유하기 위해 인간이 행하는 잔인함에 몸서리치면서, 시계공의 고통 암막으로 뒤덮인 그의 생애를 두 손으로 가리면서, 그 잔인한 아름다움을 눈과 마음에 담고 있는 자신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프라하의 야경,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천문시계를 보며 아름다움에 취해있던 그날 밤, 근심 따위 날려버리고 시계공의 전설을 애써 모른 척하며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 즐겼던 시간.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을 때, 내 안에 가득 담고 온 아름다움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내 만족을 위해 누군가의 고통을 외면했던 적이 그동안 얼마나 있었던 걸까.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기까지 그들이 겪었던 아픔, 노력, 열정을 기억하고 되새기겠다고, 기록 노트에 다음 구절을 남겼다.

      

우리는 그저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에 몸을 맡기지만 말고 강의 기원을 추적해야 한다. 그렇게 더 먼 과거를 향해 되돌아 갈수록 우리는 재즈의 선구자들이 이룩했던 뛰어난 성과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 그러나 아름다운, 제프 다이어, 2013, 사흘, 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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