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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verlove Sep 17. 2015

불량엄마_9

그해  겨울은  너무  추웠다

한  11여 년 전  겨울은   저한테는  너무나도  추웠던 겨울이었습니다

저한테는   술주정부리던  친정아버지 때문에  트라우마가 상당한 상태인데

시댁 어른 중의 한 명인  시고모님  또한  엄청난  술주정을 부리곤 했지요

무섭고  두렵고   어린 나이에  감당해내기에  그분은  대가  센 분이었지요


신랑의  월급봉투를   내가  먼저 열어보지도 못한 채  고스란히  바치야만 했고

통장검사는  기본으로  받는  시집살이를 하던 중

우리는  시고모에게   돈을 해주기 시작했고, 그 전에도  신랑 월급의 50%를 착취를 당했지요

물론   나중에  우리에게  모두  돌려준다는   명목하에.. 차용증 하나 없이 돈은 건너갔죠

임대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고  우리 보고  대출을 받아달라고 하더군요

나중에  그 아파트  우리에게  준다고 , 순진했던  20대 초반의 부부는 그 말을  믿고

카드대출  보험대출 등을 받아서  해주었지요.


하지만  결국  한계는  찾아왔고  우린  빌려간 돈을  돌려 달라고 했더니

"너  친정집에  준거 아니야?"라는 말이  돌아오더군요

후안무치   그 말에  아무리  무서움에 떨든  저도  참지 못하고  그 순간 모든 걸 엎었습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싸움!!!

증거 하나  없는  돈과의 전쟁 , 난  그래도  시할머니는 저의편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시자는 시자일 뿐이라고 , 20살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그렇게  정성껏  모시고 살았더니 


배신..................... 배반

시집살이하는 동안  30분 이상  외출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집안에서만 살았고

만삭의  몸으로  온동네  어르신들  먹을  김치전 구웠고, 한여름이고  한겨울이고 고구마삻았고

시할머니  아프시면  모든 게  내 탓 인냥  비난받았던  그 시절

어떤 날은  아이랑  시할머니께서  함께  입원을 했던  날도 있었습니다

물론  모든  잘못은  나에게  돌아왔고 , 내  몸은  한몸인데  두 사람의  병간호

심신이  지쳐버린  난  자꾸만  보채는 아이를  두들겨 패기까지 했습니다... 병실에서

그렇게  모진  시집살이를  견뎌낸  손주며느리이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증손자요 손주를

하룻밤 새에  쫓아내더군요

시고모랑  싸우고  다음날  집으로  들어갔더니   우리 짐을 모두  싸놓았더군요

속에서  피눈물이  흐르더군요, 그길로 나왔습니다

그래도  인정상  아이 사진  한장은  놓아두고 나오려고 했는데  필요 없다고  가져가라더군요

저는  그 순간   다시는   너희들을  보면  내가  인간이 아니 다를  생각하기 시작했지요

그렇게  쫓겨나다시피 한 우리들은  일단  모텔에서  머물렀고.,  모텔에서 잠들어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는데  엄마로서   너무  미안하고  비참해서   지금도 그 순간 생각하면

저는  가슴속에서  열이  올라옵니다

친정언니의  도움을 받아서   우린  원룸 방이라도  얻어서  들어갔고  그때부터 

또  다른  싸움의 시작이  되더군요



신랑은     그래도   자신들의   식구들이니.

우리들은   서로에  대한  원망과 증오로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기 시작했고

시할머니의  부고 소식이 들려왔던  그 순간   저는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신랑이  가자고  그래도  마지막인데  가봐야지라고  설득했으나  내 안의

증오심이  너무  커.. 그분의  마지막을  제가  조문해줄  여유는 없더군요

저한테는  시고모의 배신보다는   시할머니의  그 냉정했던  순간들이  더 아팠습니다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모셨는데

시할머니의  죽음으로  우리  부부의  갈등은  극에 달했고  결국  이혼 합의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법정가는  마지막 길에  서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한번

힘 모아 뜻 모아  잘 살아보기로 했지만  우리에게는  시댁에서 만들어준 빚들이

한마디로  빚잔치가 남아있더군요


하루는  담판을 짓기 위해서   집으로 찾아갔는데

아이가  듣고 있는 데  눈알을  파버린다느니, 쌍욕쌍욕을 해대더군요

거기에  살아 생전  시할머니마저  우리에게  퍼붓더군요

그때   그 순간  6살이었던  아이가 받아들인  충격과  공포는  상상 이상이었고

아이는 그 충격으로   유치원에서  계속해서  바지에  소변을  보는 실례를 했지요

얼마나  큰 충격이었으면   한 번도  그런 실수를 하지 않던  아이가.... 정말로 기가 막히더군요

엄마로서   저는  제 아이를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던 겁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도  시댁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내 아이가 받은 그 상처들

무슨 일이 있어도  용서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신랑에게는  유일한   혈육이지만.. 내  마음이  용서가 안되네요

제가  모질 수도 있지만  그해  겨울  제가  견디어내야 했던  그 시간들은  용서라는 단어조차

사치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불량엄마이기에   어린 자식 하나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던 못난 어미입니다


긴 세월................. 사람이 싫었고, 무서웠고

저는   6년이란  시간 동안  대인기피증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이런  저를  일으켜 세워준 건  역시  가족이었고

신랑과  똥똥과  저는  현재  너무나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길고 긴  터널을  뚫고  지나와   겨우  되찾은  웃음  무조건  지켜낼 겁니다

그리고  저한테는  시댁이란  존재하지  않는    무존재들일뿐입니다..

그냥  우리끼리 잘 사는 게   최고지요

그 겨울은   지금도  치 떨리는  겨울이고 , 그 겨울이  가져다준  해방을  맘껏  누리고 있습니다

만약  아직도  내가   시댁과 왕래를 하고 있다면  지금  제 삶은  여전히 감옥일 테니까요''

비싸디  비싼  교육비를  낸 결과  저는  지금 이렇게  내 마음속의  상처들을  과감 없이

끄집어내고   옛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진짜  딱  죽고 싶을 만큼  힘들다면  한 가지만  생각하세요

죽어서  패배자가 되진 않겠다는 생각., 어떻게든  버티고  이겨내서  보란 듯이

살아주세요 

그게  바로  승자가 될 수 있는 길이고........... 당신을  살릴 수 있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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