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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사리 Dec 17. 2023

나의 청춘에게

열여덟의 나를 다시 만난다면 뭐라고 말해주고 싶어?

  늦은 밤 불 꺼진 방 안에서 우리는 대화의 장을 펼쳤다. 별다른 주제 없이 그저 흘러가는 대로 서로에게 서로의 삶을 들려주었다. 어릴 적 떠났던 수학여행 속 캠프파이어가 생각났다. 눈을 감고 지난 일을 회상하던 그때처럼 우리는 조금 더 젊은 시절의 우리를 이야기했다.



 그는 후회되는 일이 많다고 했다. 조금 더 어른스러운 삶을 살았더라면, 조금 더 일찍 철이 들었더라면 지금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요즘은 그게 가장 고민이야. 여태껏 철없이 살아온 날들을 후회해.



한참을 생각하다 그에게 말했다.



-철이 너무 빨리 들어서 힘든 사람도 있어.




철이 너무 빨리 들어서. 이르게 어른스러워서.




열여덟 살, 나는 놀기보다 돈 버는 일을 택했다.




"엄마는 괜찮으니까 대학 가고 싶으면 가. 돈은 걱정하지 말고."


-엄마 나도 괜찮아. 학교보다 돈 버는 게 좋아. 걱정하지 마.




 가난은 가난을 낳는다는 말 나는 그 말이 싫었다. 언젠간 내 손으로 끊어내리라. 동생에게 용돈을 주는 일도 엄마에게 옷을 선물하는 일도 행복했다. 아침이면 기절하듯 지하철에 몸을 기대도, 가끔은 주저앉아 울고 싶어도 괜찮았다.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이었다.


SNS에 간간히 올라오는 친구들의 학교생활도 부럽지 않았다.


어쩌면 외면했을지도 모를 감정이지만.





-나는 조금만 더 철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했어. 어리광도 좀 부리고 조금 더 많이 놀고 조금만 덜 열심히 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말이야.


회상을 끝낸 후 내가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하고 싶어?"


-뭐를?


"네가 지금 열여덟에 너를 만난다면 뭐라고 해주고 싶어?"


마침 TV에는 김필 <청춘>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왠지 울음이 났다. 당황한 그가 내 손을 잡았다. 순간 용기가 났다. 나의 청춘이던 너에게 하고 싶은 말.




-애썼다.


어쩌면 가장 듣고 싶었던 말.





-애썼다. 고생했.







엄마는 열여덟의 엄마를 다시 만난다면 뭐라고 해주고 싶어?


그날 나는 작은 대화 창에 물음표를 던졌다.


여전히 고된 일을 하는 그녀는 다음 날 아침이 되고 나서야 짧은 답장을 건넸다.




"미안하다고 하고 싶어. 이렇게밖에 못 살아서 미안하다고."





... 엄마 나 간신히 눈물 멈췄는데...




우리는 둥글고 푸른 배를 타고 컴컴한 바다를 떠돌다 대부분 백 년도 되지 않아 떠나야 한다. 그래서 어디로 가나.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우주의 나이에 비한다면, 아니, 그보다 훨씬 짧은 지구의 나이에 비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삶은 너무도 찰나가 아닐까. 찰나에 불과한 삶이 왜 때로는 이렇게 길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최은영 <밝은 밤> 중-



찰나에 불과한 삶, 우리에게 청춘은 그렇다. 때로는 시리도록 아프고, 눈물 나게 고맙고, 황홀하게 행복하다. 짧은 후회보다 긴 인생에서 우리는 말한다.


청춘에게 한다.


너의 고난은 여전히 내가 되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었다고, 때때로 울어줘서 때로는 웃어줘서 조금 더 단단해진 내가 될 수 있었다고.





 어제는 함박눈이 내렸다. 흩어지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는 일은 즐겁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하루종일 누워서 잠도 자고, 깨끗이 씻기고, 밥도 잘 먹이고, 그렇게 나를 돌보다 보면 언젠가 나의 청춘도 지금의 나를 보고 뿌듯해하지 않을까. 그러면 나는 당당히 얘기하겠지.


그러니 너는 후회 없이 찰나의 청춘으로 머물러라. 그저 찬란하게.














2023년 12월, 나의 청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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