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생존자다.
죽음을 피해 살아남은 자들의 삶
연말이면 지인들에게 안부인사를 전한다. 한 해의 마무리와 새해의 시작을 응원하는 인사말이다. 누구에게나 고된 삶, 하지만 살아주어서 고맙다. 견뎌주어서 고맙다. 많은 의미를 '고생했다.'로 함축시켜 보낸다. 멀어졌던 마음이 다시 돈독해진다.
살아주어서 고맙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과 더 밀접해진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죽음을 피해 오래도 살아남았다. 죽음이 속삭이듯 올해는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생존'한다는 것은 그만큼 행운이다. 많은 것을 감내하고 지켜낸 생명은 그 자체로도 행운이다. 살아주어서 고맙다.
견뎌주어서 고맙다.
누군가 죽고 싶다고 했을 때, 견뎌달라 말했다. 그녀의 '죽고 싶다'는 말이 '살고 싶다'로 들렸다. 삶과 죽음은 그렇게 얽혀있다. 그리고 결국 견뎌냈다. 고통을 기반으로 삶이 또렷해지는 순간 우리는 더 단단해진다. 견뎌주어서 고맙다.
2023년 한 해를 무사히 마친 사람들에게 우리는 모두 '생존자'라고 말하고 싶다. 살아남았고, 살아냈고, 다시 살아간다. 후회와 미련은 '죽음'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죽음'을 염두하고 사는 자만이 윤택한 삶을 감각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요즘은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을 뇌 속에 명령어로 입력한다. 이상하게도 '죽음'이라는 단어를 앞세우면 게으른 몸도 부지런히 일을 한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명제를 떠올리면 삶이 더 견고해진다. 뜨는 것과 지는 것, 늙어가는 것과 죽어가는 것.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들이 당연해질 때 우리의 삶은 조금 더 자유로워진다.
새해를 맞이하기 딱 하루 전이다.
생각나는 많은 말들을 지우고 "고생했다."는 말로 대신하려 한다.
어둑해진 하늘에 눈비가 내리고 땅을 적신다. 햇빛을 쬐고 비가 마르면 땅은 더 견고해지겠지.
새로 시작하기 딱 좋은 날씨다.
2023.12.31 연말의 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