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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희 May 12. 2024

스위스 성당에는 십자고상이 없다

베른에 가다 1

스위스 여행 4일째, 오늘은 베른에 갔다. 애당초 여행 계획이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즉흥적으로 고른 것이긴 하지만, 내심 의도는 있었다. 한국 출발 며칠 전,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 조력자살 한국인과 동행한 4박 5일』이라는 책을 봤는데, 그 안락사 현장이 베른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을 대놓고 가고 싶다고 말하기가 망설여져서 큰애한테는 그냥 그런 책을 봤어라며 슬쩍 운만 띄웠다.     


이번에도 기차를 타고 베른에 도착했다. 베른의 분위기는 취리히와 좀 달랐다. 취리히는 멋진 느낌이라면, 베른은 고즈넉한 분위기였다. 베른은 스위스의 수도라서 국회의사당도 있지만, 스위스는 연방제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수도와는 위상도 다르고 국회의 기능도 약한 편이다. 중요 사안에 대해서는 국민 직접 투표도 많이 한다고 한다.     


애초 베른을 선택한 계기는 안락사 현장 방문이었지만, 아무래도 안락사 현장은 아무에게나 개방될 것 같지 않고, 굳이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서 성당에 가보기로 했다. 성당은 대부분 역사가 깊은 데다, 한국에서도 성당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유럽 성당도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큰애가 처음 가고 싶은 곳을 물었을 때 나는 궁전이라고 했다. 언젠가 큰애가 러시아에 갔다가 가장 인상 깊었던 곳으로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겨울궁전을 꼽으면서 꼭 가볼 만한 곳이라고 강추했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시 스위스에도 그런 궁전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런 궁전은 전제 군주가 지배한 나라에만 있다고 한다. 스위스는 역사적으로 그럴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스위스는 현재도 연방제를 채택하고 있다.     


성당에 가게 된 이유가 또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베른 역에 내려서 길을 걷다가 우연히 처음 눈에 띈 건물이 성당이었기 때문이다. 그 성당은 크지 않았는데, 지어진 지는 꽤 오래된 것 같았다. 이번 여행에서는 사진을 찍어대고 정보를 수집하기보다 가능하면 눈에 보이는 대로 감상하는 쪽을 선택했기 때문에 일일이 기록하지 않아서 기억이 어렴풋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작은 성당이 역사가 길구나 놀랐던 기억은 생생하다.
     

조심스레 지상층의 문을 여니,  1층에는 별것이 없고 아래로 한 층 내려가야 했다. 처음에는 음악회 안내 포스터만 보여서 성당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나중에 여러 성당을 가본 결과, 모든 성당에서 음악회를 자주 열고 있었다. 현대에 오면서 성당이 시민들의 문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래로 내려가니 성당 메인 공간이 나온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모든 교회와 성당에 가면 으레 있는 것, 두 가지가 없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상, 십자고상과 마리아상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 여기는 성당이 아니라 그냥 문화 공간인가 보구나, 잠정 결론을 내렸다. 성당치고는 아무래도 많이 작았기 때문이었다.  


베른에서 처음 간 작은 성당, 정면에 저 스테인드글라스만 있고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스위스에서 가장 크다는 베른 대성당에 가보고 그런 결론은 오류로 판정이 났다. 베른 대성당에도 예수상과 마리아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베른 성당만 그런가 궁금해서 나중에 취리히에서도 성당 세 곳을 가봤는데, 모두 없었다. 페북에 스위스 성당이 이렇더라고 올리니, H가 답을 달아준다. 스위스는 우상을 금기시하는 칼뱅 종교개혁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경제적 문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십자고상이 없다고 한다.  
    

오늘 좀 길어지지만, 꼭 추가하고 싶은 것은, 베른 대성당 첨탑에 올라간 이야기다. 입장료가 5프랑이라고 해서, 왜 입장료가 있지?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역시 성당 입장료가 아니라 첨탑 입장료였다. 처음부터 첨탑 입장료인 줄 알았으면 안 샀을 텐데, 이왕 샀으니 올라가기로 했다. 


사람  딱 한 명 올라갈 정도의 좁은 계단이 나선형으로 끝없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재미있었는데, 좁은 계단을 계속 뱅글뱅글 올라가다 보니, 얼마나 어지러운지, 게다가 계단이 건물 벽에 설치한 엘리베이터처럼 한쪽은 유리를 두고 바로 밖이라 고소공포증이 없는 사람도 무서울 것 같았다. 결국 다 올라가지 못하고 내려왔는데, 땅에서 위를 바라보니 너무 까마득하다. 큰애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다. 결국 루체른에 들르려던 계획은 포기하고 그냥 취리히로 돌아왔다.      


베른 대성당 첨탑 계단, 올라갈 때 못 찍고 내려올 때 찍었다.


몇 시간 동안의 베른 여행이었지만, 도시가 작아서 그런지 서두르지 않았는데도 성당 두 곳, 아인슈타인 생가, 국회의사당, 장미공원 등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징미공원에는 아직 장미가 없어서 그런지 평범했는데, 공원 자체보다 장미공원에서 내려다보이는 베른 시가지가 아주 멋있었다. 아인슈타인 생가는 길을 걷다가 이정표를 보고 어? 하고 찾아갔고, 국회의사당 역시 길 가다 눈에 보여서 들렀다. 국회의사당 이야기는 내일 이어진다. 국회의사당 광경에 문화 충격을 상당히 받았으므로 빼놓고 지나가기가 아쉽다.


베른 대성당 내부. 보통 성당에 있는 예수 십자고상도 없고, 주변에 마리아 상도 없다. 취향저격이었다.


장미공원에서 내려다 본 베른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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