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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희 May 13. 2024

국회의사당 앞에서 체스를!

    

베른에서 특히 특히 눈에 띈 것이 시계탑과 구시가이다. 요기조기에 시계탑이 참 많다. 성당의 종탑보다는 좀 낮지만 꽤 높아서 멀리서도 잘 보인다. 나중에 프라이부르크에 갔더니 거기도 꽤 많았다. 구시가의 주택은 마치 한 건물처럼 나란히 너무 붙어 있어서 건물 간격은 거의 의미가 없었다. 중간에 가끔 두어 사람 지나갈 만한 통로 같은 골목이 있을 뿐이다. 그런 곳에서 아인슈타인 생가를 만났다.   


안내하는 분은 나이가 좀 있는 여자분이었는데, 단체 손님이 와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고 우리에게 푸념 반, 양해 반의 의미로 설명해 준다. 평소에는 방문객이 별로 없나 보다. 상황을 보니, 스페인에서 교사가 학생을 인솔하고 단체 관광을 온 것 같다. 교사가 소파에 앉아 학생에게 주의사항을 주고 있었다. 나는 교사가 앉는 것을 보고 앉아도 되겠거니 하고 앉아보았다. 그런데 뒤이어 다른 가족이 와서 어른이 앉으려고 하니, 그 집 아이가 앉지 말라고 한마디 한다. 다시 보니, 소파에 앉지 말라는 주의사항이 있었다. 스페인 일행이 다 나가고 나서 내가 영상을 찍고 있으니, 큰애가 말린다. 사진 촬영은 자유지만 영상은 금지라고 쓰여있다고 한다. 이번에도 나는 주의사항을 보지 못한 것이다. 이 집이나 저 집이나 어른보다 젊은이가 낫다.   

  

드디어 국회의사당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한국의 국회의사당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한국의 국회의사당은 위엄이 높다. 문 앞에 헌병이 지키고 있고, 널따란 잔디밭에 건물도 웅장하다. 그런데 스위스의 국회의사당은 바로 옆에 있는 은행 건물과 차이를 못 느낄 정도로 평범했고, 담 같은 경계도 없었다. 정말 평범한 보통 건물이었다. 다른 건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건물 앞에 공터가 있다는 것인데, 그 공터 역시 큰 성당에 있는 앞마당 같은 크기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어른아이 할 것 없이 그 공터 바닥에 좌판을 깔고 체스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체스 크기는 다양해서 제일 큰 것은 두 손으로 들어야 할 정도였다. 한쪽에서는 마치 대국을 하는 것처럼 책상을 죽 늘어놓고 여러 사람이 마주 앉아 체스를 두고 있었다. 월요일인데 대낮에 이렇게 젊은 사람도 많은 것도 이상하고, 아무튼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했다. 취리히에서 중국공원이 있는 강변에 갔을 때도 평일인데 마치 공휴일처럼 사람이 많이 나와 있었는데 여기는 휴가도 많고 근무 시간도 유연한 건가 싶기도 하다.      


스위스 인구는 800만 명 정도라 서울 인구보다 적고, 연방제라서 주마다 독립적으로 결정하는 안건도 많으니 국회의사당이 클 필요는 전혀 없다. 그러나 그래도 부자 나라인데 잔디 깔린 정원쯤은 있어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초라하다 싶을 정도인 데다 바로 앞 공터는 완전히 시민들의 놀이터로 이용되고 있는 것을 보니, 권위 의식이 전혀 없다는 느낌이 들어서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런데 영국만 빼고 유럽의 국회의사당은 대부분 스위스와 비슷하다고 한다. 큰애한테 들으니 한국의 국회의사당은 미국을 따라 했기 때문에 지금 같은 모양이 되었다고 한다.     


안락사 현장 때문에 관심이 생겨 베른을 찾아왔지만, 생각지도 못한 우연을 만끽한 여행이었다.       


    

베른의 구시가


아인슈타인 생가에 전시된 유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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