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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희 May 11. 2024

시계의 유혹

체어마트에서 특이한 풍경이 하나 더 있었으니, 그것은 정말 시계 가게가 많다는 것이다. 그 작은 마을에 무슨 시계 가게가 그렇게 많은지. 이래도 안 살래? 위협하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평소 시계를 꽤나 애정하는 1인으로서, 그러나 제값 주고 산 시계는 하나도 없고, 잃어버리거나 망가지면 당근에서나 몇 만원짜리 샀던 터라, 새 손목시계를 그렇게나 자주 마주치니 그 유혹은 너무나 강렬했다.  작년에 스위스에 오신 큰애 시어머니는 참다가 결국 귀국길 공항에서 시계를 사셨다고 한다. 그것도 두 개씩이나.

 

처음에는 시계 가게를 외면하고 지나치다가 나중에는 정면 돌파하기로 마음먹고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여러 브랜드가 있는데,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티쏘였다. 나는 그게 티쏘인지도 몰랐는데, 큰애가 알려줬다. 그렇게 브랜드를 확인하기 전에도 엄마가 발걸음을 멈춘 시계는 언제나 티쏘였다고. 융프라우 가는 길에 티쏘 광고를 너무 많이 봐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여러 브랜드를 천천히 비교해보기도 했다. 결론은? 티쏘가 내 취향이었다.      


그래도 꾹 참고 취리히로 돌아왔다. 큰애는, 취리히에 가도 시계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걸? 거기도 시계 가게가 정말 많거든. 말한다. 그러나 막상 취리히에 오니 번화가가 아니면 시계 가게가 많지 않아 시계의 유혹에 시달릴 일은 별로 없었다. 그렇게 시계의 유혹을 견뎠는데, 지금 생각하니, 잘한 것 같다. 저렴한 축에 속하는 것도 최소 40만 원 이상인데 아무래도 한 번에 지출이 너무 크다. 굳이 시계를 안 산 또 하나의 이유는, 거기서 본 시계를 언제든지 한국에서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4, 50만 원짜리면 면세 혜택도 크지 않으니 괜히 무리해서 살 필요는 없다. 그런데 조만간 사기는 살 것 같다. 지금 시계 색이 많이 바랬으므로.     

 

취리히에 와서 큰애 실험실에 갔다. 큰애가 일하는 연구소는 국립 식물원 안에 있다. 3년 전 큰애가 취리히에 와서 실험실에서 내다본 바깥 풍경이 너무 좋아 힐링이 저절로 된다고 했던 터라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소소해 보였다. 지금 생각하니, 하도 웅장한 풍경을 보고 막 돌아온 길이라 상대적으로 식물원이 작아서 그런 것 같다. 한국 오기 전날 다시 들렀을 때는 훨씬 좋아 보였다. 며칠 전 프랑스의 콜마르와 독일의 프라이부르크를 다녀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같은 연구소인데도 맥락에 따라 이렇게 다르게 보인다. 콜마르와 프라이부르크 이야기는 다음에 자세히 할 기회가 있다.


드디어 취리히에서 숙박이 시작되었다. 이제부터는 나가서 자지 않고 취리히를 베이스캠프 삼아 당일치기로만 다닐 예정이다. 그나마도 중간에 하루는 아예 외출하지 않고 집에만 있기로 했다. 체력도 형편없지만, 고질적인 왼쪽 발목 손상 때문에 많이 걷는 것 자체가 어렵다.  게다가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줄줄이 일거리가 기다리고 있으니, 탈이 나면 곤란하다. 그렇게 스위스의 세 번째 밤, 취리히의 1박이 시작되었다.  

    

이 식물원 안에 연구소가 있다. 아쉽게도 연구소 전경은 찍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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