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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희 May 09. 2024

결국 눈물 바람

체어마트 호텔에서 생긴 일

  

그렇게 양말로 화장실 바닥은 무지하게 닦아내고 나서 늦은 점심을 먹으러 밖에 나갔다. 스위스 전통 음식으로 유명한 라클렛을 먹었는데, 한국처럼 무슨 전통의 향기가 난다기보다는 감자와 치즈로 만든 고칼로리의 평범한 음식이었다. 식사를 하고 느긋하게 몇 걸음 걷다가 들어왔다.  건식 화장실 안내문을 보지 못한 탓에 고생은 했지만, 잠자리는 편안했다. 


호텔에서 주는 아침 식사 시간이 7시라는데, 우리는 7시에 밥을 먹으면 차 시간이 안 맞아 포기하기로 하고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부지런을 떨고 내려가니 6시 40분이다. 밥을 먹을 수 있는지 슬쩍 물었더니 들어가라고 한다. 식당 안 분위기가 취향저격이다. 그냥 보기에는 평범한데,  자리에 앉으니 기분 좋은 편안함이 있었다. 아침 식사라 메뉴가 다양하지는 않았지만, 치즈며 빵이며 커피며 모두 너무나 맛있다.      


드디어 융프라우에 도착했다. 티켓 구매는 당연히 큰애가 도맡아서 다 했기 때문에 나는 그냥 따라다니기만 했다. 산악열차를 갈아타가면서 융프라우 포토존에 도착했다. 눈이 닿는 곳 모두 두껍게 눈이 쌓여 있어서 고글이나 선글라스를 쓰지 않으면 눈을 뜰 수가 없다. 개장 시간에 맞춰 갔는데도, 스위스 국기가 펄럭이는 포토존 줄에 사람이 좀 있었다. 놀라운 것은, 한 팀만 빼고 그 사람들이 모두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는 그래도 기념품을 하나 사야 할 것 같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으니, 냉장고에 붙이는 빨간 소 목각만 제일 작은 걸로 하나 샀다.  관광객을 위해 여러 가지 조형물도 있었다. 그런 조형물에는 큰 감흥이 없지만, 그래도 인증 사진은 남겼다. 


그렇게 냅다 사진을 몇 장 찍고 내려와서 짐을 맡겨둔 인터라켄 호텔로 돌아와 짐을 챙겨 이번에는 마터호른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체어마트로 향했다. 역시 기차를 타고 갔다. 체어마트로 가는 기차는 밖에서 보면 멋진 영화의 한 장면이 될 것 같아서 큰애한테 얘기했더니 바로 영상을 찾아준다. 영상은 기대만큼 멋지지는 않았다.  

    

체어마트에도 융프라우처럼 스키 타는 사람이 많았는데, 체어마트에 더 많아 보였다. 지형 때문일 것 같다. 융프라우는 어린아이를 거의 못 봤는데, 체어마트에는 대여섯 살 정도 되는 어린아이들도 많았다. 내 생각에 지형이 가파르고 거대해서 그런 것 같다. 체어마트에서 산악열차를 잠깐 타고 수내가에 올라보니 정말 어린아이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스키 코스가 있었다. 


체어마트는 마터호른이 있어서 그런지 유명한 관광지이기는 하지만,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걸어서 한 바퀴를 돌아도 한 시간이 안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택시 탈 일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전기 택시가 있었다. 여기는 관광 전략으로 전기 택시만 운행한다고 한다.    


전기차 색깔이 다양한데, 정차 중인 빨간 차 찰칵 


숙소에 들어가 침대에 누워 큰애가 묻는다. '엄마는 어디 가고 싶어?' '어? 검색도 안 해봤는데?' '스위스까지 오면서 어디 가고 싶은지 생각도 안 하고 왔다고? 어떻게 그래? 체어마트에 와서 감동 안 하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을걸? 그럼 엄마는 스위스 와서 지금까지 뭐가 제일 좋았어?' '어? 취리히에서 잠깐 탄 트램이 너무 좋더라. 트램이 정차하면 발판이 튀어나와서 마치 평지를 걷듯이 탈 수 있고, 차표 검사도 안 하니 마치 그냥 어디 건물 들어갔다 나온 것 같아서 너무너무 편하더라. 그게 제일 인상 깊네.' 


'엄마는 너무 이념적이네.' '뭐라고? 트램 좋다는 게 이념적이라고? 내가 서울에서 버스 타면서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알아?' 이 얘기를 하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겨우겨우 말을 이어서, '마을버스는 입구도 좁고 계단은 가파르고, 게다가 8번 마을버스는 얼마나 덜컹거리는지 앉아서 가기도 힘들 지경인데, 자리가 없어 서서 갈 때는 너무 불편해서 얼마나 짜증이 났다고. 마을버스라 정거도 무지하게 하니 서고 출발할 때마다 더 흔들리고.' '그럴 때는 택시를 타.' '요기서 저기를 어떻게 택시를 타냐?' 그렇게 스위스의 2박에는 눈물 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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