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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희 May 10. 2024

융프라우냐? 마터호른이냐?

여행지 검색을 왜 안 했는가로 시작해서 트램 이야기에서 이념 논쟁으로 비화하여 눈물 바람까지 불고 나서, 본격적으로 ‘왜 여행을 하는가?’, ‘여행 가는 사람을 보면 왜 부러운가?’ 하는 이야기로 화제가 넘어갔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결말은 이 여행기를 마무리할 때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      


체어마트에서 눈에 띈 것은, 전기 택시 말고 몇  가지가 더 있었다. 하나는 그 조그만 마을에 책방이 두 개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책만 파는 것은 아니고, 엽서나 문구들도 곁들여 팔았다. 그러나 메인은 어디까지나 책이었다. 책은 모두 독일어로 되어 있어서 구경만 했지만, 얼핏 보기에도 진지한 책도 많았고, 무엇보다 책 편집과 장정이 매우 세련되고 고급스러웠다. 책값까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아마도 스위스 현지인들 같은데, 남자건 여자건 사람들이 너무나 날씬하다는 것이다. 스키복 차림을 한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냥 평상복을 입은 사람들도 모두 날씬했다. 나는 언제나 과체중 아니면 비만인 상태이기 때문에 어딜 가도 저절로 사람들 몸이 잘 보이는 편이기는 하다. 그래도 한번 그걸 의식하게 되니, 더 잘 보였다. 그들은 그냥 날씬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마치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옷맵시도 좋았다.  옷들도 꽤나 값나가 보였는데 그래서 더 맵시가 좋은가 보다. 스키복을 비롯해서 장비를 빌리는 것만도 엄청 비싸다는데, 이렇게 돈 많이 드는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최소 중산층 이상일 것이니 몸 관리도 잘하고 옷도 잘 입을 것이다.      


마을을 한 바퀴 돌고 해가 떨어지기 전에 숙소에 돌아왔다. 그런데 비지스를 비롯하여 존 트라볼타 같은 7, 80년대 가수의 댄스 음악이 들린다. 밖을 내다보니 바로 옆 음식점 바깥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빽빽하게 서서 캔 맥주 같은 술 하나씩 들고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있다. 격렬한 춤은 아니고  그저 가볍게 흔들흔들 움직이는 정도다. 그런데 나이들이 젊다. 아무리 많이 잡아도 40 넘은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왜 저들은 저 옛날 노래를 틀고 놀까? 스위스 시계는 더디 가나? 기이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놀더니 갑자기 음악 소리가 그치고 그들은 사라졌다. 스위스는 해가 늦게 져서 서머타임도 있을 정도로 해가 길어 아직 대낮 같은데, 대단히 신기한 광경이었다.     


그렇게 체어마트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마터호른을 잘 볼 수 있는 수내가로 향했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숙소에서도 마터호른이 잘 보였다. 큰애가 마터호른을 가리키며 감탄을 한다. 그래도 별 감흥은 더 없었다. 작은애가 작년에 스위스에 왔다가 마터호른을 잘 보기 위해 비싼 숙소를 잡았는데 날씨가 나빠 산은 제대로 못 봐서 돈만 날렸다는 이야기를 해도 왜 저걸 보고 싶어 하는지 이해도 안 되고,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빈말을 못하는 내 성격에 그런 시큰둥한 태도를 큰애는 눈치챘을 것이고, 그래서 큰애가 더 당황했는지도 모르겠다.      

수내가도 산악 열차를 타고 올라가야 했다. 수내가에 간 것은 마터호른을 잘 보기 위한 것은 아니고, 사실은 수내가에 있는 호수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호수가 보이지 않는다. 안내소 직원에게 물으니, 호수는 한여름에만 드러나고 다른 계절에는 눈에 덮여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덕분에 마터호른을 실컷 볼 수 있게 되었다. 결론은, 장관 그 자체였다. 마을에서 보는 마터호른과 수내가에서 보는 마터호른은 너무나 달랐다. 융프라우와 마터호른 둘 중에 한 곳을 고르라고 하면, 망설임 없이 마터호른을 선택할 것이다. 이 얘기를 했더니, 큰애가 말한다. 엄마는 순수 자연파구나. 



숙소에서 본 마터호른과 여흥을 즐기는 관광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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