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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희 May 14. 2024

프랑스에 가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마을, 콜마르에 가다


스위스에 오면서 가고 싶은 곳이 있었다면 오스트리아였다. 그러나 오스트리아는 당일치기가 불가능하여 숙박도 해야 하고 비행기도 타야 해서 경제적으로나 체력적으로 무리라고 결론짓고, 기차 타고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스위스와 국경에 있는 콜마르와 프라이부르크를 가보기로 했다. 
 
콜마르 먼저 갔다. 바젤에서 프랑스 기차로 갈아타는데, 기차 겉면에 커다란 글씨가 요란스럽게 잔뜩 쓰여 있다. 좋게 말하면 감각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낙서처럼 지저분한 느낌이 든다. 콜마르에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모티브가 된 건물이 있어서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인데, 크리스마스 축제도 유명해서 그때는 관광 성수기라고 한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콜마르 역에 내리니 분위기가 썰렁하다. 취리히나 바젤과는 느낌이 정말 달랐다. 도시 규모가 워낙 작으니 다를 수밖에 없지만, 그 이상의 차이가 있었다. 건물도 너무 오래된 느낌인 데다 건물 창문에 덧댄 나무틀 페인트가 다 벗겨져서 음침하기까지 하다. 날씨는 정말 화창하고 좋은데, 사람도 별로 안 보이고 건물은 그러니 섬찟했다.  프랑스라고 하면 어디나 세련된 분위기일 것 같은 편견 아닌 편견이 있었는데, 그런 편견이 여지없이 무너진 셈이다. 큰애 말로는 파리는 더 지저분하고 상태가 나쁘다고 하니, 어린 시절 프랑스에 가지고 있던 환상이 와장창 깨졌다. 그래도 역을 벗어나 마을로 들어서니 아기자기하다.


스위스 성당에 십자고상이 없다는 데 놀라 콜마르에 가서도 성당을 찾았는데, 마침 역사도 오래되고 규모도 큰 성당이 있어서 들어가 보니, 십자고상이 있다. 그런데 미사는 하지 않고 박물관처럼 관광 코스만 된 것 같은 분위기다. 성당 출입문 앞에는 거지가 모자를 들고 한 푼을 구걸하기도 했다.  


 

콜마르에 있는 성 마르탱 성당. 꽤 큰데 칙칙한 느낌이 든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모티브가 됐다는 표지 사진의 건물은 국적을 알 수 없는 독특한 건물이었는데, 무슨 감흥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래도 인증숏은 찍었다. 그보다는 미니 베네치아라고 불린다는, 강이라기엔 민망한 조금 큰 개울가 식당에서 먹은 달팽이 요리가 더 기억난다. 콜마르에서는 프랑스 영토를 밟아봤다는 정도 이상의 인상적인 구경거리는 없었지만, 그 낯섦 자체가 주는 감흥은 있었다. 그래서 모두들 여행을 하나 싶다. 다만, 이런 체험을 위해 얼만큼의 비용을 들여도 좋은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오목한 구멍마다 달팽이가 하나씩 들어있다. 저 국물(?)에 바게트를 찍어먹는다. 보기와 다르게 아주 맛있다.


다음날은 점심에 근처 카페에 가서 책 읽는 흉내만 내고 집에서 내내 빈둥거렸다. 원래는 취리히 시내 오픈 카페에 가서 폼을 잡아보기로 한 것인데, 비도 부슬부슬 오는 데다 드디어 내 몸에 탈이 났기 때문이다. 등판의 통증이 너무 심해서 몸을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큰애한테 말하면 걱정할까 봐 참으려 했으나,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파스를 찾으니 큰애가 시드니 다녀오는 길에 싱가포르 공항에서 샀다며 호랑이 연고를 준다. 그날 이후 매일 호랑이 연고를 바르고 발목 때문에 가져간 키네시올로지 테이프를 붙이고 다녔다. 그렇게 연고도 바르고 테이프까지 붙이고 하루를 빈둥거린 보람이 있어 다음날 프라이부르크에 갈 수 있었다. 프라이부르크는 취리히보다는 베른 느낌에 더 가까웠는데, 아주 멋진 구경을 했다. 프라이부르크 이야기는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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