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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희 May 16. 2024

에피클리닉

뇌전증 전문 병원 에피클리닉에 감동하다

앞으로 남은 이틀은 지금까지보다 더 천천히 어슬렁거리며 취리히 시내를 탐방하기로 했다. 시간 순서와 상관없이 오늘은 한국에서는 접하지 못한 세 가지를 기록하려고 한다. 하나는 처음에 잠깐 말했지만, 트램이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장애인도 이용하기가 정말 편하다. 정류장마다 다음 트램 안내가 뜨는데, 장애인 승차 가능 표시가 없는 트램을 딱 한 번 보았다.      


휠체어를 탄 사람은 트램이 설 때 운전석 쪽에 가서 자기가 있다는 것만 알리면, 운전기사가 내려서 휠체어를 잘 탈 수 있게 도와주는데, 휠체어 탄 사람이 트램에 오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30초도 안 된다. 그러니 운전기사도 별로 싫은 내색할 이유가 없고, 승객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내릴 때는 승객 중 한 명이 휠체어 탄 사람이 잘 내리게 도와준다. 접이식 발판을 접어 올리는 일인데,  많이 해본 사람들처럼 능숙하다.      


트램 사진은 못찍었고, 이건 지하철 같은 열차다. 차가 정차하면 저 발판이 튀어나와서 도로와 거의 맞붙다시피 한다.  휠체어가 오르내리는 트램 발판은 저 사진보다 훨씬 더 넓다.


두 번째 시설은 뇌전증 환자를 위한 병원, 에피클리닉이다. 병원 안에는 넓은 잔디밭이 있고 뇌전증 환자의 심리 치료를 돕기 위해 말, 라마, 토끼, 닭 등 여러 동물이 있다. 동물원이라기에는 아주 작지만 도심에서 여유를 누리기에는 동물원보다 더 편안하다. 우리나라에도 노인 병원에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곳이 있다고 들었는데, 여기는 동물원 규모로 있는 것이다.     

 

에피클리닉 안쪽에 있는 풀밭. 인공적인 느낌이 별로 없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조경이다.


놀라운 곳이 하나 또 있었으니, 시각장애인이 서빙하는 곳이다. 이 식당은 실내가 어두컴컴하다고 한다. 그렇다고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시설이 아니고, 그냥 일반 식당이어서 일반인이 손님으로 가서 식사한다고 한다. 시간이 되면 그 식당에도 들어가서 식사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럴 기회가 없었다. 

   

시각장애인이 서빙하는 식당, 실내가 어두컴컴하다고 한다.


에피클리닉과 시각장애인 식당은, 일부러 찾아본 것이 아니고, 큰애 집에서 연구소까지 가는 길에 있어서 눈에 띄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취리히 시내에 이런 시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열심히 공부하지 말자 콘셉트라 더 찾아보지는 않았다. 그래도 충분히 놀라고 감동했으니 아쉽지 않다.   

  

큰애가 사는 집은 전형적인 주택가다. 큰애는 셰어하우스로 방 한 칸 세를 얻어 살고 있다. 이층 건물인데, 한 층에 두 가구씩 살고, 건물 간격이 아주 많이 떨어져 있다. 이 집에서 놀란 것은 세탁기를 집집마다 가지고 있지 않고, 지하에 공동 세탁실이 있어서 세탁기와 건조기를 동전을 넣고 사용한다는 것이다.  내가 꿈꾸던 바로 그 방식이다. 이런 식으로 하면 집집마다 세탁기와 건조기를 사는 비용도 아끼지만, 공간도 그만큼 확보되니 일석이조다. 아파트는 고층이니 그대로 도입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겠지만, 찾아보면 방법이 나올 것이다. 예를 들어, 복도식이라면 층마다 세탁실을 둘 수도 있다. 좁은 아파트라면 공간 확보와 비용 절약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건물 사이에는 바비큐를 해 먹을 수 있는 야외캠핑장 같은 곳이 있어서 어느 가족이라도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큰애한테 물어보지는 못했는데, 미리 예약까지 하는 것 같지는 않고, 비어 있으면 이용할 수 있는 방식인 것 같다. 꽤나 안락을 누릴 수 있는 적절한 환경이었다. 그러나 스위스에 사는 사람 모두에게 해당되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유학생에게는 그냥 잠시 거쳐가는 곳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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