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덕을 밝힌다는 것, 신민 한다는 것
그동안 원본 대학의 순서로 대학을 읽었다. 지난번까지 읽은 범위를 말하자면, 주자의 편집 방식으로 경 전체와 전 6장이다. 그리고 성의誠意 문단 뒤에 있는 『시경』의 시 두 편, 절차탁마 이야기와 선왕을 잊지 못한다는 이야기까지 같이 설명했다. 물론, 주자는 이 시 두 편을 지선에 머문 효과로 보고 다른 자리에 배치했다는 것까지 설명했다.
이제 드디어 주자의 『대학장구』로 들어왔다. 주자는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수신을 근본으로 삼으니, 근본이 흔들리는데 마무리가 잘 되는 법은 없고, 두텁게 해야 할 곳에 엷게 하고, 엷게 해야 할 곳에 두텁게 하는 법은 없다’는 데까지 경이라고 보고, 그 뒤에 삼강령을 설명하는 듯한 문장을 차례로 놓고 전傳의 시작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전 1장은 명덕을 밝히는 이야기, 전 2장은 백성을 대하는 이야기, 전 3장은 지선에 머무는 이야기다. 오늘은 전 2장까지만 올린다.
전 1장 명덕을 밝힘에 대한 설명
康誥曰 克明德, 太甲曰 顧諟天之明命, 帝典曰 克明峻德, 皆自明也.
강고왈 극명덕 태갑왈 고시천지명명 제전왈 극명준덕 개자명야
강고(서경書經 중 周書주서의 한 편)에서 말하기를 “(문왕은) 덕을 잘 밝혔다.”라 하였고, 태갑(서경 중 상서商書의 한 편)에서 말하기를 “(탕왕은) 이 하늘의 밝은 명을 늘 돌아보았다.”라 하였으며, 제전(虞書우서 중 요전堯典)에서 말하기를, “(요임금은) 큰 덕을 잘 밝혔다.”라고 하였으니, 모두 스스로 밝힌 것이다.
서경은 중국 고대 역사서인데, 그중에서 주서는 주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서술 대상이 주나라를 개창하는 데 큰 공을 세운 문왕과 무왕에 대한 것이 많다. 무왕은 무력으로 상나라를 정벌했기 때문에 논란이 있지만, 무왕의 아버지 문왕은 조용히 주나라 백성에게 호감을 받았다고 전해져서 평가가 갈리지 않는다.
여기서 살펴볼 것은, 왜 명덕 밝히는 이야기를 세 번이나 썼는가 하는 것이다. 강고, 태갑, 제전은 역사적으로 가까운 데서 먼 곳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특징이 있을 뿐, 내용 자체가 크게 다른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늘의 밝은 명령이나 덕이나 큰 차이가 있을까? 덕이나 준덕(큰 덕)이나 질적인 차이가 있을까? 수사학적으로 반복을 통해 명명덕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자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강고에서 제전까지 순서가 명덕을 밝히는 깊이가 깊어져 간다고 보았다.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보실지 궁금하다.
전 2장 친민과 신민에 대한 설명
湯之盤銘曰, 苟日新 日日新又日新, 康誥曰, 作新民, 詩曰 周雖舊邦 其命維新, 是故 君子無所不用其極.
탕지반명왈 구일신 일일신우일신 강고왈 작신민 시왈 주수구방 기명유신 시고 군자무소불용기극
탕의 세숫대야에 새겨진 경구에서 말하기를, “정말 하루라도 새로워졌다면, 날마다 새롭게 하고, 또 날로 새롭게 하라.”라고 하였고, 강고에서 말하기를, “새로워지려는 백성을 북돋우라.”라고 하였으며, 시경에서 말하기를, “주나라가 오래된 나라지만 그가 받은 천명은 새롭다.”라고 하였으니, 이런 까닭에 군자는 그 최고의 기준을 사용하지 않는 때가 없다.
여기서 반盤을 주자는 욕조라고 보았지만, 현대 중국의 사상가 남회근은 세숫대야라고 고증한다. 남회근의 설명이 더 설득력 있다. 세숫대야에 새겨야 보기도 쉽고 매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가장 궁금한 것은, 탕임금이 세숫대야에 새긴 구절은 자신을 새롭게 한다는 뜻일까? 백성을 새롭게 한다는 뜻일까? 앞에서는 분명히 친민親民이라고 했는데, 왜 여기서는 新이라고 했을까? 하는 것이다.
탕의 반명이나 강고의 말이나 시경의 말을 백성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로 의미라는 보장도 없다. 오히려 명덕 밝히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작신민’作新民에서도 이미 백성이 새로워지려고 하고 있고, 주나라가 받은 명이 새로운 것은 문왕과 무왕의 업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문장을 하나씩 새기다 보니,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 많다. 이것이 고전의 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