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시작된 자기혐오
보이스피싱 그 후부터 최근까지. 약 6~7년간 나한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다시 그날로 돌아갔다.
현명하지 못했던 나를 탓했고. 그날, 그 일이 없었다면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들이 나를 좀먹기 시작했다.
기분이 썩 괜찮은 날엔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내가 아닌 다른 누구라도 당할 수 있는 일이야.
생각하다가도
왜 하필 나야?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 몇 년을 암흑 속에 살았다.
삶이란 뭘까. 살면서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내가 이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뭔지.
불행으로 가득한 이 삶을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지.
주어진 삶을 다 살아낸다면 나한테 어떤 이득이 있는지.
하나님은 분명 인간에게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준다고 했다. 근데 당시 내가 겪고 있는 시련은 도저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내 마음의 크기가 작아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에 제일 우울한 사람은 나라고 생각했다.
나보다 힘든 사람이 많다는 게 그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원래 내 상처가 제일 아픈 법이니까.
행복과 불행이 모두 내 안에서 시작된다는 걸 그땐 미처 몰랐다.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나는 행복한 사람이,
불행한 사람이 되기도 했다.
사실 아직도 위의 다섯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다 찾지는 못했다.
삶이 뭔지,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뭔지.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아낸다면 나에게 어떤 이득이 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보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냥,
내가 충실히 삶을 살아낸다면 위 3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알 수 있을 것도 같아서.
더 이상 삶이 불행하다고 느껴지지 않아서 네 번째 질문은 의미가 없어졌다.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니 삶이 버틸만하더라.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을 땐, 매일이 지옥이라 아침이 오지 않기만을 바랐다. 아니면 지구 멸망이라거나.
근데 지금은 그냥 아침이구나. 이제 밤이구나. 생각하는 걸 보니 내 마음이 참 많이 바뀌었다고 느낀다.
그렇다고 모든 일에 무덤덤해지지는 않더라.
어차피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미래라면,
하루하루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자.
어제보다 오늘이 0.1%라도 나은 내가 될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