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태어났는데
20대 중후반에 내가 가장 많이 생각했던 생각은, '눈 뜨면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삶을 누군가에게 나눌 수 있다면, 내일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에게 내 남은 삶을 다 나누고 나는 그만 살았으면 좋겠다.'와 같은 생각을 하루에 수백 번, 주말엔 눈 떠 있는 내내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삶의 이유를 몰랐다. 내가 계속 삶을 지속해 봤자, 10년 뒤, 20년 뒤 혹은 더 나중에도 나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이 삶을 살아가고 있겠지. 그건 정말이지 너무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나 하나도 책임지지 못하는 삶. 부모님을 책임지지 못하는 삶. 어쩌면 부모님에게 의지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했을 땐, 정말이지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텼던 이유는, 내 소중한 부모님에게 자식을 먼저 보내는 불효를 저지르고 싶지 않아서. 단지 그 이유였다. 스위스에서 안락사가 가능하다고 하니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난 스위스를 가야겠다. 막연하게 생각했다. (위키백과에 검색해 보니 현재 스위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프랑스 등이 제한적인 안락사를 도입했다고 한다. 네덜란드는 안락사 전면 합법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신기하게 딱 50까지만 살고 싶다는 남자친구를 만났다. 남자친구가 당시 30대 중후반이었기 때문에 나는 '이 사람이 지금 장난치는 건가?'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연애를 하다 보니 그 사람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걸 알았다. 내가 그건 부모님께 못할 짓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마저도 크게 개의치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삶이래나 뭐래나. 50살이라고 정한 이유는 20대 때, 하늘의 명을 깨닫는 나이, 지천명이 너무 멋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란다. 남자친구와 연애초반에 했던 얘기가 스위스 안락사 얘기라니. 인생은 정말 알 수가 없다.
물론, 지금은 내가 30년 넘는 연애를 하고 싶으니 60살까지로 연장해 보는 건 어떻겠냐고 3년을 졸랐다. 처음엔 들은 척도 안 하더니 이젠 마지못해 알겠다고 한다. 예전엔 습관적으로 내뱉던 50살의 나이가 이젠 60살로 바뀌었다. 이젠 70살로 꼬시고 있는 중인데, 아직 안 넘어왔다.
이제 수명은 120세 시대로 가고 있는데, 60까지만 산다면 내가 누리지 못할 60년의 시간이 너무 아깝지 않을까?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강산이 6번 바뀌는 동안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오늘 당장 희망이 없어도 내일은? 그다음 날은?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인데, 오늘 힘들었다가 내일 좋은 일이 생기지 말란 법이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내가 태어날 확률은 로또 1등보다 더 쉽지 않다는 얘길 어디선가 들었다. 로또 1등을 간절히 바라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내가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이다. 물론 내 삶을 내가 원해서, 우리 부모님을 내가 원해서 선택할 수는 없다. 그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도, 선택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다.
다만, 강제로 주어진 내 인생이라도 앞으로의 인생은 내가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삶은 워낙 변수가 많아서 당장 내일의 일도 알 수 없으니, 오늘이 너무 많이 힘들어도 오늘만 버티면 내일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오늘이 제법 살만해진다. 당장 인생을 바꿀 수는 없어도, 내 생각, 내 행동, 내 태도는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