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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미 Dec 01. 2024

인간관계에 쓰는 에너지를 줄였다

나는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선호한다



우리는 살아가며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그 속에서 평생 유지할 수 있는 관계는 과연 몇 명일까.



내가 여덟 살이 되어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나는 부모님을 따라 거주지역을 옮겼다. 동네에서 꽤 큰 초등학교라 12반까지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전교에 아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한동네에서 자라면 유치원 동기라도 있기 마련인데, 나에겐 그 흔한 유치원 동창 친구도 없었다. 초등학교 6년 동안 기억에 남는 친구는 딱 한 명인데, 1학년을 마치고 이사를 갔고 그 이후로 연락은 끊겼다.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었다.


2학년이 되었을 땐, 연년생 동생이 같은 초등학교에 입학해 5년 내내 함께 다녔다. 등하교를 항상 동생과 함께 했다. 엄마가 동생은 잘 챙겨야 한다고 했고, 당연히 세상  모든 언니들은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나는 그렇게 자발적 아싸가 되었고, 내가 은따였다는 사실을 초6에 깨달았다. 아마 그때부터 나는 관계를 맺을 때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으로 자라게 된 것 같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전교에 나포함 3명만 같은 학교로 뺑뺑이 배정되었다(3명인지 2명인지 교류가 없어서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때 들었던 생각은 뭐였더라? 차라리 잘됐다였던 것 같다. 그 많은 사람 중에 단 두 명. 심지어 내가 모르는 애.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딱 좋은 환경. 이때부터 눈치를 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친구를 만들기 위해서.


그렇다고 뭐 많은 친구를 사귄 것은 아니고, 동생이 아닌 삼삼오오 모여 놀 친구가 생긴 건 처음이었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때 내 평생 친구 1명을 얻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재까지 연락하는 친구는 1명, 대학교 졸업 후 선후배, 동기를 포함해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는 3명이다. 이중에 한 명과는 1년에 1번 정도만 만나고 가끔 연락하는 사이기 때문에 종종 안부만 주고받는 사이라고 할 수 있다(한마디로 친구보다는 지인, 동기에 가깝다).


이렇게까지 자세히 얘기하는 이유는, 학창 시절의 친구가 전부가 아니며 인간관계가 좁은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학창 시절 친구도 대학에 들어가면서, 취업하고 결혼하면서, 아이를 낳으면서 관계가 멀어지기도 한다. 내가 연고도 없는 지역의 대학을 진학하면서 학창 시절 친구들과 만나기 어려워졌고, 친했던 친구들이 20대 초중반에 결혼을 하면서 인간관계가 또 한 번 바뀌었다. 이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인간관계는 내가 원하는 대로 맺고 끊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물론 에너지를 더 쏟는다면 조금 더 유지할 수 있긴 하지만 그러고 싶진 않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더 많은 사람을 사귀고 만났던 것 같다. 학교라는 교집합이 없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더 재미있고 즐거웠다. 물론 그 관계 중에서도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들은 손에 꼽을 수 있다. 누구와 어떻게, 얼마나 많은 연락을 하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누구와 얼마나 깊은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친구가 많아도 내 속마음을 털어놓을 친구 한 명이 없다면, 그 많은 관계는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많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알게 모르게 많은 시간을 들였을 텐데, 정작 힘들 때 위로받을 수 있는 친구가 없다면 살아온 삶이 너무 허무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지낸다고 해서 내 마음이 채워지거나 외로움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나는 스무 살부터 시작된 타지 생활로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인데, 그건 사람을 만난다고 해서 채워지는 외로움이 아니었다. 그런 기분을 느끼고 있다면, 사람을 만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허무함이 느껴지는지 행복감이 느껴지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사람을 만나고 혼자 집에 돌아오면 늘 외로움을 느꼈다. 결국, 인간관계에서 도 중요한 것은 '나'였다.


그걸 깨닫고 나서는 '나'에게 더 집중하고 나를 채우기 위한 시간에 집중했다. 내가 피곤하다고 느끼면 굳이 사람을 만나지 않았고,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최대한 뒤로 미뤘다. 처음엔 이렇게 하면 사람들과 더 멀어지게 되지 않을까 고민했지만, 결국 남을 사람은 남는다. 그리고 그렇게 남은 사람들은 나에게 챙기고 싶은, 중요한 사람들이 되었다.



어차피 평생 인연이란 정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 상황, 내 시기에 맞춰 좋은 인연들로 늘 새롭게 채워지는 법이니까. 나를 힘들게 하는 관계를 오래 유지할 필요는 없다. 직장에서 날 힘들게 하는 사람도 회사 밖에선 남이고, 회사를 그만두면 영원히 보지 않을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제법 편해지기도 한다.


관계란 내가 준 만큼 돌려받을 수 없으며, 내가 원하는 만큼 받을 수 없다. 관계의 총량이 사람마다 다르므로 그 사람이 나에게 준 것이 100이었다고 하더라도 나한텐 1만큼 느껴지는 경우도 많고, 반대로 상대가 1을 줬는데도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관계란 내가 싫은 것과 내가 좋은 것을 명확히 할 때 더 탄탄해지게 된다. 내가 오래 관계를 맺고 싶은 사람이라면, 내가 누구인지 그 사람에게 명확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나를 잘 알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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