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기술가정 시간이었다. PPT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는 자유주제로 자신이 소개하고 싶은 것을 소개하는 과제를 받았다. 다른 아이들의 발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무엇을 발표했는지는 똑똑히 기억한다. 수동적인 학교 생활중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자료를 수집하고 발표하는 것이 눈을 반짝이게 했다. 내 발표 주제는'세상의 건축물들'이었다. 엔틱한 외관, 현대적인 건물, 세계적 건축물 등 예술적인 건축물들을 찾아보는 것이 내 취미였다. 그 숙제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걸 보면 오롯이 내 관심분야를 파헤치고 소개하는 시간이 뜻깊게 다가왔던 것이다.
중학교를 졸업한 지 15년이 넘었다. 아직도 나는 건물을 좋아한다. 들여다보고 사진을 찍고 또 들여다보고. 대학교 입시 시즌에 엄마에게 건축학과를 가겠다고 했다. 가고 싶은 대학교도 알아보고 학과도 정해서 엄마에게 말을 꺼냈다. 엄마가 그토록 심하게 반대하시는 건 처음 봤다. 절대 안 된다고 하셨다.
제주시 노형동
애월
"그런 건 힘들어서 안돼. 그리고 여자가 하기에는 더 힘들어." 엄마에게 이야기해보고 또 해봤지만 엄마의 언성만 높아질 뿐이었다. "절대 안 돼! 무슨 건축과야 건축과는. 거기 가서 뭐할 건데!" 그건 아직 모르는데, 그냥 궁금하고 가고 싶은걸 어떻게 해. 건축학과 말고 이런저런 다른 비슷한 학과들을 엄마에게 얘기해 보았지만 다 반대하셨다. 엄마는 결국 인 서울 4년제 대학에 내 성적에 맞춰서 학과를 추천해 주셨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느꼈고 그 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엄마도 내가 고생하길 원치 않으셨겠지.
대평리
그런데 사람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한 번 정해진 취향은 잘 변하지 않나 보다. 대학을 입학한 이후로 건축물에 대한 내 흥미는 떨어졌고, 한동안 잊고 지냈지만, 스마트폰이 나오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면서 잊고 있었던 관심사를 다시 찾았다. 건물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그때 알았다. '잘 못된 게 아니었구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해도 되는 거였구나'. 또 한 가지 충격을 받은 건 건축학과에 여학생들이 꽤 있다는 것이고, 잘 나가는 여성 건축가들도 있다는 것이었다. '나도 할 수 있는 거였네.' 라는 깨달음.
내 취향은 변하지 않았고 그것을 업으로든 취미로든 일상에서 가까이 놓고 살고 싶어졌다. 비록 바라던 건축학과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건축물에 대한 흥미는 아직 아직 유효하다. 생각해보니 '건축'처럼 건물을 만드는 것보다는 지금처럼 바라보고 감상하는 것이 내게 더 잘 맞는 것 같다. 누군가 공을 들여 지은 건물을 바라보기만 해도 기쁨을 얻으니 건축자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중학교 때 발견한 내 흥밋거리. 아직도 유지되고 재미를 느끼고 있다는 게 신이 난다. 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