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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일기장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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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숲 Jan 04. 2021

차이

영하 8도. 오늘 최저기온이다. 요 며칠을 칼바람이 귀를 콕콕 쑤셨다. 겨울인 것이다. 그것도 한겨울. 창문 밖 풍경이 어느새 무채색(자세히 들여다보면 또 다른 색들이 있지만)으로 가득하다. 장롱의 공간만 차지하던 수면잠옷을 입고 보일러를 틀었다. 고장 난 온수매트 수리도 맡기고(내일 맡겨야지) 물도 이제 상온에 보관해서 마신다. 올해 10월과는 주변 환경이 사뭇 달라져 있다.

제주도에 다녀온 지 한 참이 지나서 글이 써지지 않아서인지, 아님 실행력이 부족해서였는지 일주일 동안 게시글에 사진만 첨부해 놓곤 글을 쓰지 못했다. 10월의 제주를 1월의 서울에서 쓰기란 기억을 한참이나 곱씹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때와는 계절도 주변 환경도 차이가 있지만, 그때처럼 나는

여전히 방황 중이다. 20대 중반까지는 주변에서 살라는 대로 살았다. 나도 그것이 정답이라 생각했고 그 기준에 맞추어 살았다. 그렇다고 해서 명문대를 나왔다거나 대기업에 입사했다거나 한 건 아니다. 회사에 들어가지 않으면 낙오되는 사람 취급, 적성을 찾으러 떠나면 '어떻게 사람이 자기가 좋은 일만 하면서 살아', '그 나이에 무슨 적성이야..' 하며 이 세상엔 오로지 하나의 길 밖에 없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나도 내가 답답했다.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었고, 뚜렷한 계획도 없었다. 사회에서 자꾸 튕겨져 나가는 내가 잘 못된 줄로만 알았다.


작년 초부터 독립을 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보였다. 이제까지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틀을 바라보고 나를 욱여넣으려고 했는데, 나를 온전히 바라보게 된 것이다. 나의 성향,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일할 때 나의 모습 등. 정말 신기했다. 나를 들여다볼수록 내가 못된 사람이 아니라것을 알았다.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상, 부모님 세대가 원하는 직업의 모양과 '나'라는 사람의 삶의 방식과는 다를 수도 있다는 것.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달라'라고 생각해보지 못했다. 한 번도.

계절은 바뀌었지만 나는 변함이 없다. 나는 여전히 회사의 '인재상'과는 다르다. 혼자 일하는 것을, 시간을 유동적으로 쓰길, 좋아한다. 일 자체가 싫은 게 아니다. 내 방식대로 하고 싶을 뿐. 남들은 터부시 하는 일을 광내 보고 싶다. 광이 나는지 안 나는지, 그것도 스스로 정하면서. 10월과 1월, 계절의 차이는 있지만 나는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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