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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일기장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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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숲 Jan 06. 2021

파도의 모양

애월 해안가

끊임없이 일렁이는 물결을 넋을 놓고 바라보는 게 '물 멍'이지 싶다. 집 앞에 나서면 바닷물로 눈동자가 차오르는 수평선이 놓여있다. 여행객 입장에서 바다를 볼 때는 이 바다를 가도, 저 바다를 가도 물결 모양이 고만고만해 보인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던 10월의 나는 중단기 여행자의 신분으로 바다를 마주했다. 바다에 빨려들어 갈 듯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제주를 여행하는 내내 파도의 수십 가지 모습에 말을 잃고 감탄하기 바빴다. 



파도를 잡자


바다가 바람에 일렁일 때 뾰족뾰족 튀어나오는 파도. 얼마나 빠르게 올라왔다가 사라지고 다시 올라오는지. 너무 아쉬워서 애완 파도를 삼고 싶다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뾰족뾰족뾰족. 손에 파도를 가둬보고 싶었다. 손에 잡히지 않는 때문인지 매일매일 바다를 보게 된다. 물은 스스로 생동력을 갖고 있지 않다. 가만히 두면 그대로 정체되어 있지만 바다가 되어 바람을 만나면 수 만 가지 모습이 된다.


용수포구 / 금능

 바위 사이의 물길을 만들기도 하고,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길이 되기도 하고, 뾰족뾰족 물결(내가 좋아하는), 촤아아아 쏟아져 굴러들어 오는 파도가 되기도 한다. 빛을 만나면 또 다른 바다의 모습을 본다. 칠흑같이 어둡고 차갑기도 하고, 주황, 노랑 빛으로 따뜻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보랏빛과 하늘빛을 내뿜기도 한다. 세상 어떤 예술품도 이와 같이 다양하며 아름다우며 신비로울 수 없을 것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파도는 끊임없이 색과 모양을 바꿔가고 있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가 놓친 수많은 파도의 모양이 아쉽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이유이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 나오는 흰 벽돌의 바다 앞에 지어진 주인공의 집은 내 꿈의 집이다. 이구(남자 친구)가 그랬다. 꼭 그런 집에서 살자고. 바다를 앞마당으로 둔 그 하얀 집에서 살자. 놓치고 싶지 않은 파도가 아주 많다.

파도 안에 무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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