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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테오 Jun 06. 2019

#3 당신과 나는 늘 위기였다, 지금까지도




지난해 내 부모님은 내게 당신과 헤어질 것을 종용했다. 부모님이 헤어짐을 재촉한 이유는 많았다. 


내 나이는 마흔을 앞에 두고 있다. 올해 내 나이는 한층 더 마흔에 가까워졌다. 부모님이 생각하기에 당신과 나는 내 삶의 가장 아름다운 젊은 날을 함께했다. 그 시간 동안 당신과 나는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결론을 짓지 못했다.  이것이 헤어짐을 독촉한 가장 큰 이유였다.


또 다른 이유는 나와 부모님이 당신과 나의 관계를 보는 시각이 달랐던 데에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10년을 넘게 만나며 헤어짐이 없는 게 이상하다. 나는 적어도 다투고 화를 내는 편이 더 건강한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부모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쩌면 당신들의 딸이 늘 먼저 헤어짐을 고했기에 더 그랬던 것 같다. 먼저 헤어짐을 고하고 돌아서서 아픈 딸을 보는 것은 부모님에게도 힘든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을 보내고 늘 다시 돌아가는 딸이 이해되었을 리도 없다.


부모님은 내가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당신과 나의 관계가 정리되기를 바란다. 아마 지금도 내색은 못하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실 것이다. 부모님이 이 관계의 결말에 대해 어떠한 확신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부모님은 두 가지를 확신하고 있다. 하나는 내가 새로운 시작을 하기 위해서는 당신과의 관계가 확실하게 결론지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 관계의 끝에서 내가 힘들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부모님은 당신과 헤어졌을 때의 나를 지켜보았다. 그러하기에 당신과 내가 각자의 길을 가게 될 경우 내가 한동안 힘들어하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다. 그리고 부모님도 당신과 나의 관계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결론지어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길면 6개월이다. 그러니까 적어도 올해 안이다.

 

걱정의 90퍼센트는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걱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부모님의 걱정과 말씀은 한 군데도 틀린 데가 없다. 오히려 다 맞는 이야기에 가깝다.      



Lewis Hine, Laying Beams, Empire State Building Construction, 1931, Gelatin silver print ( vintage),



당신과 나는 너무 오랜 시간 새로울 것 없는 관계를 이어왔다. 그리고 위기는 자주 있었다. 어쩌면 늘 위기였다. 루이스 하인의 사진 속 모습과 같은 상태로 10여 년을 이어온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이 상태로 10여 년을 넘게 이어온 것이 신기할 정도로 늘 위기였다. 


   

나는 습관적으로 당신과 헤어졌다. 욕을 먹을만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사실이다. 처음에는 몇 년이던 그 주기는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몇 달 정도로 조금 짧아지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늘 오늘이 마지막일 것처럼 당신과 헤어졌다. 그때마다 나는 늘 이런 다짐을 했었다. 이번에는 진짜 끝이다, 이제 내 삶의 마지막 날까지는 다시 보지 말아야겠다... 그럼에도 나는 당신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그렇게 돌아간 나를 당신은 늘 아무 말 없이 받아줬다.     


이 정도면 내가 천하의 나쁜 사람으로(차마 욕을 쓸 수는 없다) 보일 것 같다. 아니라고 못 하겠다. 나는 적어도 당신에게 있어서 지독하게도 나쁜 사람이다.     


내가 당신과 헤어질 때마다 혹은 헤어짐을 생각할 때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나를 둘러싼 여러 상황들이 늘 문제였다. 변명 같겠지만 실제로 그랬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다. 가족들의 반대도 있었다. 점점 많아지는 내 나이도 문제였다.   

그렇게 나는 종종 당신을 떠났다. 그리고 늘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음을. 당신에 대한 내 마음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천하의 나쁜 사람임을 알지만 당신에게 돌아갔다. 마치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당신에게 그 수많은 헤어짐의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정확히는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당신은 내 마음을 아는 것처럼 늘 나를 받아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헤어질 것을 독촉받았던 지난해의 상황은 내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내 부모님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탓이었다.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런데 나는 도저히 당신과 헤어질 수 없었다. 당신과 헤어지는 이유가 다른 사람들 때문인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나는 시간을 벌기로 했다. 내 부모님이 제안하는 방법들을 수용하면서 내 나름의 방식으로 당신과의 관계를 지켜보기로 했다. 고백하자면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났다.

매주 주말이면 나는 장 베로의 그림 속 여자처럼 꽃같이 단장하고 새로운 누군가를 만났다. 나를 꾸미는 그 시간이 귀찮았고 불편했다. 그분들께 미안하지만 애초에 그 만남들은 내 방어책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그대로 내보일 수가 없었다. 주말이면 나는 전혀 나답지 않았던 낯선 내가 되어버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생각했다. 혹시 확신을 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어떻게 할까 하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적어도 작년 연말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Jean Beraud, Dinner at Les Ambassadeurs, oil on canvas, 35,5x45,5 cm, Paris, Hôtel Carnavalet





당신과 나의 관계는 이렇게 위험과 위기를 간직한 채로 해를 넘겨 이어졌다. 당신이 알면서도 모른 척 했던 것인지, 아예 몰랐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당신은 늘 어떤 내색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 정말 큰 위기가 닥쳤다. 위기의 정도로 치면 상위권에 속할 정도였다. 그렇게 확신했던 내 마음에 조급함이 찾아왔다. 한 살 나이를 더 먹었다는 비겁한 변명을 한다. 한편으로 이제 너무 지쳐서 새로움이 필요했다는 변명도 한다.  


   

올해가 시작되자마자 우연인 듯 필연인 듯 나는 누군가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당신과 나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위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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