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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테오 Jun 08. 2019

#4 위기인가 기회인가, 적당한 당신에게 끌렸다




Pietro Longhi, The Ridotto in Venice, 1750‘s, Private collection



"기회는 위기의 가면을 쓰고 온다...?"


몇 달 간의 위기는 기회였을까? 


분명한 건 지난 몇 달을 보낸 후에야 당신의 사랑을 알았다. 그리고 당신이 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당신이 얼마나 큰 같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아직 당신과 내가 함께 걸을 것이라고 단정짓기엔 너무 이르다.


새해가 되었다. 나는 늘 그렇듯이 꽃 같이 꾸미고 맞선녀가 되었다. 날씨는 추웠다. 최강한파로 불린 시기였다.
주선자는 맞선남이 내 나이보다 많다고 했다. 그는 또한 나보다 나이 많은 선남을 소개하며 내 나이가 많다고 했다. 나는 몹시 불쾌했다. 그래서 빨리 적당히 대충 만날 생각이었다. 적당한 날, 적당한 카페에서 적당히 차만 마셨으면 했다.

일반적으로는 선을 보거나 소개팅을 할 때,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전자는 밥을 먹자는 사람이며 후자는 차를 마시자는 사람이다. 대개의 경우 전자는 선  혹은 소개팅 상대에게 기대가 있는 사람, 후자는 기대가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Henri Gervex, Cafe Scene in Paris, 1877, Detroit Institute of Arts




솔직하게 나는 그림처럼 적당히 붐비는 카페에서 적당한 차를 마시는 후자를 선호한다. 나에게는 기대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면 오늘 처음 만난 사람과 10여년 알던 사람처럼 스스럼 없이 인사도 하고 대화도 한다. 이 경우는 오늘 처음 만나도 보통 지속적으로 보게 될 사람들이다. 선이나 소개팅은 다르다. 사실 한 두번만 만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데 굳이 이 낯선 사람과 밥을 먹고 싶지는 않다는 거다. 다만 상대가 정하면 따르기는 한다.



선남은 황금 같은 주말에 밥을 먹자고 했다. 낯선 사람과 밥을 먹을 생각만으로 이미 지쳤다.



약속을 잡고 며칠  영상이던 날씨는 약속날이 되자 영하로 내려갔다. 약속날짜를 바꾸고 싶었다. 그러나 빨리 해치우고 싶은 마음이 훨씬 더 컸다. 그래서 그 영하의 날씨에, 꽃 같이 차려입고, 드라이까지 받고, 약속장소로 향했다.

나는 약속시간보다 5분쯤 일찍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늦는다고 전화가 왔다. 기분이 불쾌해졌다. 차도 딱히 막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5분이든 10분이든 늦는다는 것은 나와의 약속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당신은 처음부터 이렇게 불성실한사람이었다.
이 징조를 나는 모르는 척 했다.


(여기서부터 당신은 선남입니다. 새로운 호칭도 귀찮고 한동안 당신이 될 뻔한 분이라 일시적이지만 당신으로 합니다.)

10분 정도 늦게 당신이 왔다.
나를 스쳐 걸어 오는 당신에게서 담배 냄새가 났다. 고백하자면 나는 담배 냄새에 예민하다. 나는 담배 냄새를 맡으면 속이 메슥거리고 머리가 아파온다. 특히 자동차를 타서 담배 냄새가 나면 더 힘들다.
그렇다고 내가 흡연에 대해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는 못하더라도 가끔 물고 있기는 한다. 그러다보니 담배를 기호 식품으로 생각해서 불만은 없다. 다만 담배 냄새는 조금 불편할 뿐이다.

지각, 담배, 그리고 지나친 밝음까지, 당신은 모든 게 나와 맞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당신을 그 날 단 한번만 만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는 식사가 시작된 어느 순간부터 꽃처럼 단장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기대보다 불쾌함이 컸던 탓에 당신과 밥을 먹는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보는 당신의 눈빛이 생각보다 따뜻하게 반짝인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고민했다. 다시 당신을 만날지 말지를.
적당했다, 당신은 결혼을 하기에 적당해 보였다.
그리고 적당했다. 10년간 나와 함께한 당신을 정리하기에, 떠나기에, 그때가 가장 적당한 시기였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잊고 있던 것이 있었다.
내가 적당함과 타협하면 늘 문제나 일이 생겼다. 그런데 그날 나는 그것을 깜빡했다. 어쩌면 모르는 척했을 수도 있겠다.



그저 지나쳐버리기에 적당함은 너무나 안락해보였다.

적당함에 이끌린 나는 당신을 만나보기로 했다.


그렇게 위기인지 기회인지 모를 시간이 막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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