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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테오 Aug 25. 2019

#42 달콤했어야 할, 씁쓸한 선물

기대가 컸던 탓일까, 실망감이 컸던 탓일까.




당신과 헤어진 날, 함께한 시간의 사진은 다 지웠다. 당신과 관련된 것이든, 되지 않은 것이든, 당신과 함께한 그 시간, 그 몇 개월을 전부 지우고 싶었다. 당신이 내게 준, 유일한 선물도 버렸다. 내가 버리지 않더라도 언젠가 없어졌을 테지만, 버렸다.



당신과 만나는 동안, 당신과 내가 유일하게 주고받았던, 단 하나, 그 선물.

당신에게 말을 한 적이 없으나 나는 그것을 좋아한다. 그것은 저렴한 것부터 비싼 것까지 매우 다양하게 있다. 편의점에서도, 로드샵에서도, 마트에서도, 백화점에서도, 명품관에서도, 브랜드샵에서도, 그 어디서에든지 쉽게 살 수 있다.
내 핸드폰에는 당신이 내게 준 것 이외의 다른 것의 사진도 있었다. 그러니까 당신이 준 것을 a브랜드의 것이라고 하면, 내 핸드폰에는 b브랜드의 사진이 있었다. 나는 b브랜드의 그것을, 꽤 좋아한다. 그저 그들이 닮았다는 이유로 지우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문제는 가끔씩 사진을 정리하다  그 사진을 마주칠 때면, 당신에게 그 선물을 받았던 그날, 내가 느낀 그 씁쓸함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당신에게 선물을 받아서 집에 가서 열어보기까지 나는 매우 설렜다. 당신에게는 어떻게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당신이 내게 주었다는 이유로 그저 좋았다. 

그런데 내가 그 포장을 풀면서, 얼마나 실망했는지, 당신은 모를 것이다. 

당신은 마치 누구에게 시켜서 그 선물을 산 듯했다. 

그 선물에는 나에 대한 그 어떤 애정도, 하다 못해 그 어떤 고민이나 생각도, 없어 보였다.

당신이 내게 준 것은, 나에 대한 애정이 아니었다. 

당신이 내게 준 것은, 내 선물에 대한 답례일 뿐이었다. 

다만 나 혼자 애정으로 잠시나마 착각했다. 

솔직하게는 착각하고 싶었다.


당신에게 이야기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나는 당신에게 줄 선물을 고르며, 행복했고, 설렜다.

나는 당신에게 줄 선물을 사던 그 날, 하루 종일 설렜다. 아니다. 그 며칠 전부터 그랬다. 유명한 곳, 좋다는 곳을 찾아서 검색도 많이 했다. 그 당일에는 여기에 가봤다 저기에 가봤다 한참을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어디에서나 살 수 있는 것이었지만, 나는 당신에게 특별한 것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만큼 내가 당신을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고민하고 생각한 끝에야 마지막으로 들어간 그곳에서 당신에게 줄 선물을 골랐다. 그곳에서도 나는 한참을 고민했고 고심했다. 선물을 받고 기뻐할 당신을 생각하며  그렇게나 설레는 마음으로.

당신에게 그 선물을 줄 수 있음에 나는 그저 설렜고 그저 행복했다. 

무엇보다 당신이 그 선물을 받고 좋아해 주어서, 나는 더 많이 설렜고 더 많이 행복했다.



좌 John William Waterhouse, Pandora, 1896, private collection.

우 John William Waterhouse, Psyche Opening the Golden Chest, 1903, private collection.


그렇게 설렜고 그렇게 행복했던 만큼, 당신이 준 그 선물을 열어봤을 때, 내 실망감은 컸다.

워터하우스  John William Waterhouse의 그림 속 판도라 Pandora와 프시케 Psyche가 상자를 열었던 것처럼, 나는 설렘과 기대를 가지고 그 선물을 열었다. 

그런데 그 선물 어디에서도 나를 향한 생각은,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의무감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했다.

아마도 당신은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브랜드에서 가장 대중적인 상품을 고른 듯했다. 그러니까 당신은 백화점 1층의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립스틱을 사 온 듯했다. 나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저 인기 있는 립스틱을 말이다.
그때 내가 당신에게 바란 것은 그렇게 좋은 것도 비싼 것도 아니었다. 내가 그러했듯이, 나를 생각했음이 조금이라도 드러나는 선물이었으면 했다. 

이제와 생각하니 눈치가 지나치게 좋은 스스로가 좀 억울해진다. 그때 내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나는 그때 그 선물 덕분에 좀 더 행복하고 조금은 달콤했을 테니까.

사실 그때 선물을 열며 직감했던 것 같다.
당신은 내게 선물을 주었다. 그러나 당신은 이미 지나간 사이이지만 여전히 현재인 그녀를, 그녀와 함께한 시간을 생각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당신의 과거는 늘 그렇게 현재였다.




당신이 내게 준 그 선물은 달콤했어야 하는데, 그저 씁쓸할 뿐이었다.
그 모든 씁쓸함은 전부 당신 탓이었다. 

그 이후 나는 그것에서 어떤 달콤함을 느낄 수 없었다. 그 어떤 것일지라도, 내게는 이상하게 씁쓸하기만 하다. 가끔은 아무런 느낌조차 없다... 내 미각이 이상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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