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유월말의 여행 메모를 살핀다. 나의 삼# 휴대전화의 기능을 확인이라도 하듯, 알레르기 증상을 방지하기 위함이라며 외출 후 습관처럼 휴대전화를 물로 씻었다.
깔끔을 떠는 내게 경고라도 하는 듯, 제 아무리 광고에서 나를 물에 씻어도 된다고 했지만 이리 마구 씻으면 물을 먹는다며 휴대전화 카메라가 위급하게 말을 한다.
남편은 물 먹은 휴대폰을 든 내게 튀르키예에서 그 등록비(세금)가 얼마인지 아냐며 나의 값비싼 깔끔함의 위험성을 상기시킨다.
"미리 걱정하다, 지금 이 순간을 놓쳐"
뿌연 뮌헨 하늘 사진 덕분에 내 값비싼 습관을 단번에고쳐졌다. 이 와중에도 아들의 신난 표정을 찍겠다며, 셀피를 찍을 수 있는 카메라렌즈는 멀쩡하다며 기억을 담을 사진을 위해 휴대전화를 돌렸다.
놓칠 수 없다며 카메라의 버튼을 누르는 나와 달리 평온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앉아계셨다.
어르신은 아이들을 느긋하게 바라보고 계신다. 독일, 여기도 황혼육아가 있구나. 나도 그들 옆에 자리를 잡았다.
2023년 6월 27일
여기 박물관 식당은 왜 또 이리 아름다운 것인가. 뮌헨의 전경이 모두 보인다. 가족권을 발권하고, 오전시간에 입장한 우리는 오후 4시가 되어서야 이곳에 도착했다. 구# 지도에 통상 3시간을 국립 독일박물관에서 머문다고 했는데, 네 시간이 지나고도 우리는 아직 이곳에 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일은 아직 볼 게 남았다는 것이다. 아들은 남편과 내게 말한다.
"지금처럼, 더 있고 싶어."
우리는 그렇게 오후 4시에박물관 레스토랑에서 겨우 도착했다. 주스 한잔과 빵을 먹고 다시 전시관에 간다. 이게 무슨 극기훈련인가.
아들은 자연과학, 에너지, 교통, 인간과 환경, 통신,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어린이관까지.
결국 아들은 문을 닫는다는 방송을 들으며 함께 나가면서도 다시 이곳을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상 깊은 것이라며 뿌옇게 변한사진을 몇 백장 찍고, 땀을 흘리며 쉼 없이 운하를 만들고 구슬을 굴러 운동에너지를 시험하고, 정말 모든 관을 세세하게 둘러보고, 문 닫는다는 방송이 아직도 여기 있냐며 우리를 밖으로 내보내려 한다.
놀면서도 다시 오고 싶다며 벌써부터 아쉬워하는아들과 어린 손자를 보며 이런 그들의 신난 모습이 익숙한 할아버지, 할머니 옆에 나란히 앉아 그들을 바라본다.
나 또한 뮌헨에 오래전부터 살던 사람이었던 것처럼, 독일할아버지 옆에서 앉아 주섬주섬 손수건을 꺼내 아들의 땀을 닦아준다. 아이들은 정말 하루를 신나게 보냈다.
뿌연 카메라로 찍어 분명히 보이지 않은 너의 표정이건만 카메라 시선 너머 너의 모든 순간은 하늘 위로 향한다.
사진 속 너의 작은 손의 생생함이 네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말한다.
갑자기 궁금하다. 아들, 나는 언제까지 네가 이렇게 세상이 재밌다며, 신기한 세상에 환호하고 손을 올리는 너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너에게 모든 게 시시해지는 그 순간이 올까. 불현듯 지금 너의 이 모습을 오래 보지 못할까 봐 벌써 가슴에 시린다.
무덤하게 세월 앞에 앉아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옆에서 철없이 나이 듦을 겁내본다.
우리 지금처럼 오래 더 있자는 너의 말에, 문을 닫는다는 방송이 이 박물관 가득하게 울려 퍼질 때까지 서로의 곁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