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자체로 사랑받는다는 것

불혹의 사춘기 10 <사랑, 참 어렵다.>

by 딱따구루이
위의 아기는 저희 둘째 아이입니다.


안녕하세요. 루이입니다.

여러분은 나라는 '존재' 자체로 사랑받아 보신 경험이 있나요?

저는 최근에 불혹이 되어서야 그 느낌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저를 사랑하지 않으셨다는 것은 아닙니다.

어머니는 희생적 사랑, 아버지는 서툰 사랑주셨습니다.

많은 사랑을 주셨겠지만 존재 자체로 사랑받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습니다. 분명 존재자체로 저를 사랑하셨을 텐데 말이죠. 왜 기억나지 않는 걸까요. 저는 불효자식입니다. 흑흑.


어느 날 밤,

아이가 자는 척하는 저에게 너무나도 조심스러운 뽀뽀를 하기 시작합니다.(둘째 아이와 같이 잠을 자는 사이입니다.) 마치 자고 있는 엄마를 깨우지 않으려고 애쓰듯이. 그리고 엄마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소중하다는 듯이.

뽀뽀 세례가 끝나고 아이가 잠든 후 엄마를 사랑하는 아이의 마음이 전해져 한참을 울었습니다.


'나는 이토록 사랑받는 사람이구나.'


저는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게 분명합니다. 이런 아이를 저에게 보내주시다니요. 하하.

아이에게서 존재 자체로의 사랑을 받았고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금 글을 쓰다가 문득 의문에 대한 실마리가 보입니다.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의 사랑을 받지 못해 존재자체로 사랑받아본 적이 없다고 느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엄마에게 전화를 해봐야겠습니다.

잠시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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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생각하는 스킨십과 제가 생각하는 스킨십에 커다란 간극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위에서 제가 쓴 글에 힌트가 숨어 있었네요.


뽀뽀. 소중하다는 듯이.


이걸 이제야 깨닫게 되다니! 글을 쓰다 보니 생각이 정리되면서 그동안 의문이었던 것들이 풀리는 경험을 합니다. 글쓰기의 힘은 대단합니다!


사랑받았다는 생각은 들지만 뭔가 2% 부족한 느낌이었던 이유를 찾았습니다.

엄마가 사랑을 주셨던 방식이 제가 원했던 사랑의 방식과 결이 맞지 않아 발생한 결핍이었네요.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들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누군가는 물질적인 선물을 받았을 때,

누군가는 떨리는 사랑의 고백을 들었을 때,

누군가는 자신의 과오를 눈감아줬을 때,

누군가는 소중한 보물을 대하듯 자신을 아껴줄 때,

누군가는 자신을 믿어 줄 때,

누군가는 내편이 되어줄 때,

누군가는 날 위해 희생해 줄 때,

누군가는 사랑스럽게 만져 줄 때 등등,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각자 다 다르게 한다는 것을,

저 또한 제가 생각한 사랑의 정의가 있었다는 것을,

엄마가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가 있었다는 것을.

저는 어리석게도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왜 나에게 존재자체로 사랑해 주지 않았냐며 의문을 품고 투정을 부렸습니다.

잠시만요. 엄마에게 다시 전화를 해야겠네요.

여러분들도 글 읽기를 잠시 멈추고 소중한 사람에게 전화해 보세요. 그리고 말하세요.


사랑한다고.

.

.

.


이제 다시 돌아와서,

사랑의 결이 달라 발생한 결핍. 그래서 마음에 와닿지 않았던 사랑. 존재 자체로 사랑받는다는 느낌은 결이 같아야 경험해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랑의 결이 맞는 사람을 불혹의 나이에 아들로 만나게 되었네요. 하하.


어린아이는 부모를 사랑할 때 조건을 보고 사랑하지 않죠.

돈이 많은 부모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예쁘고 잘생겨서 사랑하는 것도 아닙니다. 먹을 것을 잘 줘서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한다고 해서 사랑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내가 부모이기 때문에 아무런 조건 없이 부모라는 사람 자체로 부모를 사랑합니다.


무조건적인 사랑.

무조건적인 신뢰.

무조건적인 믿음.


언젠가는 이랬던 아이도 조건적인 사랑을 하게 되는 때가 올까요? 부모로서의 저를 평가하는 시기가 올까요?


자, 이제 저는 존재자체로의 사랑을 경험하고 인식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존재자체로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있을까요? 아이가 아기였던 아주 어릴 때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저 세상에 이 작은 생명이 존재한다는 자체로 사랑했습니다. 그때는 존재 자체로 사랑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저는 아이를 조건 없이 사랑하고 있을까요? 건강하게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말도 조건이 붙는 느낌입니다.

그냥 너를 사랑해를,

너라서 좋아를,

아이에게 전달해주고 있을까요?

요즘 미운 4살인 아들은 저에게 조건적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뒤숭숭합니다. 말을 잘 들어야만 아이에게 사랑을 주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부모가 조건 없이 아이를 사랑한다는 게 가능 하긴 한 걸까요?

아이가 존재자체로 사랑받아본 경험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 벌써부터 섭섭합니다. 흑흑.


사랑은 참 어렵습니다.


끝으로,

이제 정말 끝이네요. 흑흑.

불혹의 사춘기 시즌1 마지막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저의 어설픈 이야기에 많은 관심과 응원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시 정비하는 시기를 가지고 불혹의 사춘기 시즌2로 돌아오겠습니다.

연재를 잠시 쉬는 동안 저의 일상이 궁금하신 분들은 인스타그램(@foru4321)을 방문해 주세요!

브런치스토리의 많은 작가님들과 독자님들의 앞날을 항상 응원합니다!

모두모두 오늘도 행복하세요!

그럼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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