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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티 Aug 30. 2023

소설 쓰는 중 No.2

-베이비 부머, 남자 1호 방을 빼다 Ver.2-

소설 쓰는 중입니다.

  오늘은 남자 1호가 퇴직한지 이틀째 되는 날이다. 친구인 남자 13호가 남대문에서 만나 갈치정식을 사 주겠다고 했다. 먼저 퇴직한 선배로서 노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남자 1호의 친구인 남자 13호는 증권맨으로 진즉에 회사에서 나왔다. 그나마 남들보다는 좀 늦게 나왔지만 강남에 건물을 물려 받는 바람에 작은 월급이라도 주는 직장을 다녀야만 했기에 몇 년간을 구청의 일용직으로 근무했다. 생전 육체 노동이란 건 해 본적이 없는데 육체 노동을 했다. 요즘 집에 있으면서 저녁에는 가끔 대학 동기들을 만나는데 남자 1호에게 저녁 모임에 가자고 했다. 남자 1호는 평일에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 저녁 모임은 일단 거절부터 했다. 남대문을 가기 위해 공항철도를 타러 계양역을 가는데 지나다니는 모든 사람이 다 퇴직을 한 것처럼 보였다.      



  남자 13호가 회현역 4번 출구에서 남자 1호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남자 1호는 자신을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라 자신하는 타입이라 가기 전에 인터넷에서 남대문시장 골목 안의 갈치 정식에 대해 알아보고 한껏 기대에 부풀어 갔다.

  그런 남자 1호를 보며 노는 것에는 이력이 난 여자 1호는 꿈을 깨고 싶지 않아 잘 다녀 오라고 인사만 했다. 마음속으로는 대로변에 있는 짬뽕이 더 맛있다고 생각하면서.
 

  웬일로 남자 1호가 중간에 카톡으로 남자 13호와 찍은 사진을 보냈다. 그래도 직장생활을 오래도록 해서인지 남자 1호가 남자 13호 보다 5~6년 젊어 보였다. 그래서 오글거림을 가까스로 참으며 가족 단톡방에 올린 사진 밑에 ‘좋아요’를 누르고는

  -남자13호 보다 10년은 어려 보여. 누가 보면 형이랑 다니는 줄 알겠네.

  직장생활할 때 남자 1호는 AI처럼 일만 했다. 절대 필요한 말 이상의 수다나 정보를 카톡이나 문자로 하는 법이 없는 인간이었다. 아마도 연애 시절에 여자 1호에게 해야 할 말을 거의 다 소진한게 아닌가 여자 1호는 늘 의심했다. 이젠 확신한다.     

  그런데 10분쯤 있다 카톡으로 남자 1호가 답변을 했다.

  -남자 13호가 화 냈어. 자기한테 형 같다고 해서

  -당신 미쳤어?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 그니까 내가 당신은 사회적응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했어, 안했어?

  -농담이야.     

  농담이야.

  대체 얼마만에 들어보는 남자 1호의 농담이란 말인가. 여자 1호는 순간 마음이 찡했다.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그 작은 가슴으로 세상을 헤치고 사느라 농담할 새도 없었구나. 50이 되면서부터는 그럴 여유조차 없이 자신의 150%를 쏟아 간신히 버텼구나.

  여자 1호는 자신이 능력이 있다면 남자 1호의 여생을 먹여 살리고 싶단 생각이 들었지만, 그간의 삶이 녹록치가 않아 여자 1호도 그런 준비는 안 되어 있음에 안타까울 뿐이다.           




  남자 1호, 서울에서 돌아올 때는 벌써 적응이 되는지 이렇게 하루를 보내는 게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살짝 하다가 이내 그만 두었다. 혹여 여자 1호한테 내색이라도 하는 날에는 후폭풍이 있을지 모르므로 차차 적응기를 거치면서 즐겁게 하루하루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다들 퇴직을 했건 퇴근을 했건 대학생 때 이후로 이렇게 마음이 가벼워 보긴 처음이다. 선배들의 말처럼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가 개운하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다. 하루종일 개운하다.


집으로 오는 길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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