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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끼 Nov 03. 2022

노견의 산책_이리쿵 저리쿵

멍멍이와 땅을 밀어내고 걷기


푸코는 갈 '지(之)'자로 걷는 강아지였다.

 

 보호소 출신 강아지들에게는 평온한 잠자리와 풍족한 식사만큼이나 산책이 값지고 귀하다. 평생 뜬장에서 한 번도 발바닥으로 온전히 땅의 촉감을 흡수할 수 없는 녀석들도 많다. 푸코 역시 산책이 너무 신난 나머지 산책길의 모든 냄새를 맡고 싶어 길의 좌측 우측 냄새를 모두 훑어야 집으로 돌아가는 강아지였다. 녀석과 산책을 하고 나면 진이 빠졌다. 게다가 시바 특유의 고집으로 자기주도적인 산책을 선호하기에 나는 거의 끌려다니다시피 했다는 게 맞았다.

집 에 앙 가~


 그러던 녀석이 점점 여기저기 부딪히는 횟수가 잦아졌다. 나이가 들어 자주 부딪히고 인간처럼 기력이 많이 떨어져서 움직이는 걸 귀찮아할 법도 한 데 푸코는 여전히 산책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그럼에도 녀석의 시력 탓인지 자신의 왼편에 무언가 안전한 게 없으면 걷기 두려워 하기 시작했다. 오른쪽에 차도가 있으면 피해서 왼쪽 울타리에 착 달라붙어 산책을 한다. 인적이 드물 때는 상관없는데, 가끔 마주오는 사람과 우측통행이 꼬여 그의 갈길을 방해했던 적이 여러 번이다. 그럴 때마다 '죄송해요. 애가 앞을 잘 못 봐요.'를 인사처럼 뱉는다.


 수의사 선생님은 이제 푸코에게 일정한 산책 루트를 만들어주는 것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셨다. 두려워할 수 있으니 너무 새롭고 복잡한 것보다는 푸코가 좋아하는 산책 경로를 두세 가지 정도 정해 반복해서 다닐 것을.

'생활 반경을 줄여 나간다.' 한 아이가 커가면서 인지하고 학습하는 생활의 범위는 점점 넓어진다. '집 - 동네 - 시 - 도 - 나라 - 세계' 순으로 자신의 행동반경도 함께 커진다. 반대로 나이가 드는 푸코는 이제 그 생활 범위를 점점 좁혀 나가고 있다.


노견의 산책 - 이동거리는 길지 않게 하되 오래 쉬고 오는 게 중요. 복잡한 곳은 안고 가는 게 좋음.
새로운 동네 탐색

 푸코가 부딪히는 횟수가 많아질 때마다 마음이 쓰리다. 천방지축 같이 활개 치던 에너지가 사라지고 오히려 부딪힘으로 인해 또 다른 외상을 초래하진 않을까 싶은 마음에. 예측 불가능한 장애물이 가득한 도시에 살다 보니 산책길은 늘 변수가 가득하다. 오가는 행인부터 자전거, 오토바이, 어느 날 등장한 가로등과 같은 도시구조물, 예년처럼 뒤엎히고 다시 깔리는 보도블록까지. 어제와 오늘의 다른 풍경에 이리쿵 저리쿵 부딪히는 녀석을 볼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다.


 변수들을 최대한 제거하고자 복잡한 길들은 녀석을 들쳐 메고, 너른 공원이나 한적한 들, 평원을 찾아간다. 촌스런 강아지는 처음엔 업히는 가방을 어색해하더니, 이제 녀석은 등에 업히면 어딘가 뛰다니기 편한 곳으로 간다는 걸 아는 건지 순순히 반려인의 등에 몸을 맡기곤 한다.


가을산은 업혀서


 녀석의 기대에 응하고자 지근거리에 둘이 오갈만한 산책길을 탐색하는 건 요즘 나의 즐거움이다. 떨어지는 낙엽에 일찍 떠날 것 같은 가을을 느끼며, 동생에게 빌린 접이식 자전거를 타고 어디에 녀석을 싣고 갈지 다가오는 주말이 설레는 건 시간의 유한함을 어떻게든 무한하게 빽빽이 즐기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덧.

나의 할머니는 올해 아흔 살이 되셨다. 이제 사회인이 된 지 10년도 넘은 손녀에게 뵐 때마다 학생이냐고 물으신다. 한 십여 년쯤 전의 시간에 할머니는 멈춰계신다. 오랜 관절염에 거동이 불편하시지만, 주말이 되면 어김없이 바람쐬러 가자는 말을 하신다. 나이가 들수록 생활범위가 좁아진다고 해도 여전히 미지의 너른 세상을 꿈꾸는 건 우리의 본능일지 모른다. 푸코에게 루틴과 함께 가끔은 색다른 곳으로의 여행을 선물하고 싶다.


브런치 푸코 두부 이야기 

인스타그램 @foucault.doobu

가을 들꽃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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