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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샘 Nov 11. 2019

남의 기준 말고 네 생각을 말해봐

내가 나를 모를 땐 나는 꼭두각시였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쓰고 사회의 기준에 쫓아가려다 탈진했다. 그런 나는 허수아비였다.


첫 회사에서 대표에게 불려가 이런 말을 들었다.

“왜 화장을 안 해? 예의 없이. 남한에서 화장 안 하면 예의 없는 거 몰라?”

남한 사회를 전혀 모르던 때여서 대표의 말에 ‘아, 남한에서 화장 안 하면 예의 없는 거구나’ 하고 받아들였다. 그 후로 예의 없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서툰 분칠을 하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맞지 않는 정장을 껴입는 것처럼 답답하고 불편했다.


3개월쯤 지났을까, 함께 일하던 직원이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너 거만하대.”

“왜? 내가 뭐 잘못했어?”

이유를 물으니 입사하자마자 사무실 방을 따로 쓰더니 직원들과 말을 섞지 않고 농담도 받아주지 않아서라고 했다. 방을 따로 쓰는 이유야 대표가 사무실에 책상을 더 놓을 자리가 없으니 빈 방에 들어가라고 지시한 걸 모두가 알고 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농담을 받아주지 않는 주장에 대해서는 내가 낯을 심하게 가려 말을 트는데 시간이 걸리고 말 수가 적은 성격 탓이라고 설명했다. 말을 하면서도 변명하듯이 구구절절 해명해야 되는 상황이 불편했다. 

‘농담을 안 하니 거만하다’고?


그 외에도 나를 평가하는 단어들이 있었다.

이기적인, 곰같이 둔하고 미련한, 게으른, 나약한...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함부로 던지는 말에 주눅이 들었다. 그들이 던지는 쓰레기 같은 말에 울고 웃는 말의 노예가 되었다.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야, 곰같이 둔하고 미련하고 게으르고 나약하기도 하지. 거만한 사람이기도 한가?’


어느 날 고향에 계신 엄마를 걱정하다가 친구에게 말했다.  

“엄마를 돕고 싶은데 내 형편이 어렵네. 많이 보내지도 못하면서... 내가 좀 이기적인 사람이잖아. 나는 이것밖에 안 돼.”

그때 친구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너의 형편에서 최선을 다해 엄마를 돕고 있는데 네가 왜 이기적인 사람이야? 너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지.”

“어~엉?”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마음이 ‘따뜻하다’와 ‘이기적이다’는 너무 반대되는 말이어서 잘못 듣거나 이해한 거라고 부정하다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친구는 내가 그동안 엄마와 가족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설명했다. 눈물이 났다. 

하지만 오랫동안 길들여졌던 부정적인 사고를 되돌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거짓을 지우는 데는 많은 자기 암시와 시간이 필요했다. 


‘네가 나 듣기 좋으라고 위로를 하는구나. 고맙지만 아니야,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 맞아.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어.’ 

그가 포기하지 않고 다시 강조했다.

“친구야, 남들이 말하는 너 말고 진짜 너, 네가 너를 제일 잘 알잖아. 남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네 생각을 말해 봐.”

친구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왜 남의 말에 휘둘리도록 나를 내버려 두었을까. 왜 나보다 남의 말에 더 의존했을까.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나의 능력을 알지 못해서, 나의 가능성을 믿지 않아서였다. 


남의 말 중에는 때로 뼈를 때리는 충고도 있을 수 있다. 필요한 조언은 받아들이되 인격을 무시하거나 부정적인 말에는 단호하게 “NO!”를 외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말에 휘둘려 ‘나’를 잃고 말의 노예가 될 수도 있다.  


내가 아는 를 하나씩 정리해 보았다.

● 나는 말이 조금 느리고 말 수가 적다. 나는 생각이 정리되어야 말을 할 수 있다. 말이 적으면 실수를 적게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손이 느려 단순노동에 적합하지 않다.

● 나는 말보다 글이 편하다. 말은 뱉으면 주어 담을 수 없지만 글은 수정 보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 나는 생각이 많은 편이다. 어린 시절부터 찢어지는 가난을 잊기 위해 공상(상상)을 많이 했다. 아무 저항 없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배부르게 먹고 무슨 일이든 해내는 무적의 상상을 하면서 지루하고 고단한 시간을 버릴 수 있다고 여겼다. 요즘은 인생이 무엇인가? 왜 사는가? 같은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을 한다.  

● 나는 낯을 많이 가린다.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이 어렵고 굳이 내가 먼저 말을 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도 하다. 대인관계는 넓은 것보다 깊이를 선호한다.

● 나는 숫자에 약하다. 둘 이상의 수가 나오면 머리가 하얗게 리셋 될 때도 있다. 돈 관리나 각종 셈법은 되도록 피하고 싶다.  

● 나는 독립적이고 고집이 센 편이다. 하고 싶은 말은 해야 되고 가고 싶은 곳에 가려고 노력한다. 

●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시스템에 갇히는 것을 힘들어 하고 계획표(일과표)를 거부한다. 여행을 좋아하고 사진 찍는 취미를 갖고 있다.

● 나는 요리를 잘하지 못한다. 주방에 들어서면 머리가 하얘지고 의욕이 떨어진다. 밥 해주는 사람이 옆에 있거나 음식 만드는 로봇이 있으면 사고 싶다.

● 나는 주변이 정돈되어 있지 않으면 피로함을 느낀다. 모든 물건은 자기자리에 있어야 안정감을 느낀다.

● 나는 화장과 명품을 좋아하지 않는다. 향냄새가 부담스럽고 명품이란 화려하고 비싼 포장재 같아 맘에 들지 않는다. ‘너는 화장도 안하고 명품도 싫어하고, 여자 맞니?’ 종종 묻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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