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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샘 Nov 11. 2019

상처도 치유도 사람으로부터


깊은 우울감에 빠져 시들어가던 시기가 있었다. 사람이 많은 장소에 가면 숨쉬기 힘들고 친구만나는 것도 두려워 전화기를 꺼버렸다. 스스로 모든 대인관계를 차단한 것이다. 

돈이 없어 TV, 인터넷도 끊겼다. 그러자 온 세상이 조용하고 고요해졌다. 암울한 현실을 잊기에는 잠이 최고였다. 잠을 잔 시간만큼이라도 시간을 버릴 수 있고 죽음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다. 사는 게 지겹고 이대로 죽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내 팔을 붙잡고 소리소리 질렀다.

“이러다 죽어, 진짜 죽는다고. 네가 죽으면 엄마 얼굴 어떻게 볼 거야.”

동생은 기어이 나를 집 밖으로 끌어내어 남북 여성들이 모이는 합창단에 데리고 갔다. 


긴 시간 동안 나를 기다려준 사람이 또 한 명 있었다. 상해 교회에서 만난 20년 지기 친구였다. 그는 ‘이렇게 살아야 돼, 저러면 안 돼.’라는 세상의 기준을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기다려줄 뿐이었다. 그는 아이 둘을 키우는 빠듯한 살림에도 교통비하라며 매달 계좌에 돈을 넣어주었다. 그는 친구이기 전에 고마운 은인이다.  

빛이 보이지 않는 깊은 터널을 지나는 동안 나는 사람에 상처받고 치유도 받으며 인생을 배우고, 이음새를 고쳐 매듯 단단해지고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나를 깊이 알아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바깥세상은 저들끼리만 즐겁고 활기차 보였다. 웃고 떠들고 즐겁게 노래 부르는 사람들 틈에서 멍하니, 나는 혼자 외로운 섬이 된 기분이었다.

처음해보는 합창 연습에서 나는 다른 파트에 휘둘리지 않고 내 음정을 찾아내느라 고생 좀 했다. 내 음을 찾고 나니 힘을 빼고 옆 사람의 소리를 들으라는 지휘자의 요구(조언)가 들렸다. 

이제 겨우 내 음정을 찾아가는데 힘은 왜, 또 어떻게 빼는 거지? 힘을 빼고 옆 사람의 소리를 들으며 내 음정까지 이 3가지를 동시에 해내는 훈련은 생각보다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다. 


노래연습을 하며 합창과 사회생활(대인관계)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옆 사람의 생각도 들어야 한다. 아울러 모두의 마음을 잘 조율하여 더 낳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합창연습을 통해 나는 사회와 사람과 관계 맺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언젠가 “사진으로 풀어본 나의 이야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그림일기와 비슷한 건데 그림 대신 내가 찍은 사진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림그리기에 재주가 없는 편이어서 사진이 좋다고 생각했다. 

사진 찍는 방법을 가르쳐주던 전문 강사가 사진은 네모난 프레임 안에 무엇을 담느냐, 빼느냐의 싸움이라고 설명했다. 무엇이든 무조건 많이 담아야 좋은 것이 아닌, 빼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 프로그램을 통해 나는 사진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고 지금은 내 기준에 좋은 카메라를 장만하고 시간이 될 때마다 사진 찍으러 다니는 호사취미를 즐기고 있다. 사진은 자랑할 것 없이 지루하고 고리타분한 내 삶에 활력을 주고 있다.


나는 삶이 힘들고 지루하다고 느껴질 때 카메라를 들러 메고 집을 나선다. 산으로 바다로, 어디로든 떠나 원하는 곳에 프레임을 맞추면서 자연에 기대어 숨 고르기를 한다. 그 시간이 나는 행복하다고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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