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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샘 Nov 11. 2019

절망과 희망사이 49 vs 51

스크린도어가 없던 시절 지하철 선로 앞에 서면 그 속으로 뛰어들고 싶다는 충동에 자주 시달렸다.


남한에 온 후로 ‘탈북자’인 내가 뿌리 없는 나무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겉모습은 멀쩡해 보이지만 실상은 뿌리가 잘린 채로 남의 땅에 위태롭게 서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추석이나 설이면 갈 곳이 없어 빈 집에 덩그러니 혼자 있었다. 생일날은 엄마 생각에 울 것 같아 애써 바쁘게 지나 보냈다. 좋은 일도 투정 부리고 싶은 순간에도 기대어 울 곳이 없었다. 나는 돌아갈 고향도 엄마도 잃은 고아 같았다.


학교에 가려면 지하철 1호선과 5호선을 타야 했다. 스크린도어가 없던 시절, 역사 안으로 지하철이 달려오는 순간이면 선로로 뛰어들고 싶다는 충동이 번개같이 날아들었다. 

‘잠깐이면 돼, 몇 미터만 달려가면 끝날 거야. 그러면 모든 것이 고요해질 거야.’

부지불식간에 가슴골에서 뇌리로 이상전류가 쭉 뻗치다가 멍하게 사라졌다. 10초 아니 5초, 지하철이 바람을 밀며 지나가는 순간까지 뇌리는 끝내느냐 견디느냐 사이에서 수 천 번의 진자운동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철제난간을 으스러지게 움켜잡았다.

끝내고 싶다는 절망 49, 그럼에도 살아야 된다는 의지 51.

한 치의 희망을 부여잡기 위해 많은 눈물이 필요했다. 


동생과 지나온 시간들을 회상하던 어느 날, 그 아이도 나와 비슷한 자살충동을 자주 경험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다. 

동생과 나는 중국 국경지역에서 헤어지고 난 후 10년 동안 생사를 모른 채 살다가 하나원에서 극적으로 상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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